솔루션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짧은 복습과 핵심 정리.

“신문을 펼쳐 들기가 괴롭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로이터저널리즘이 펴내는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뉴스를 보지 않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 적이 있다”는 문항에 한국 응답자의 54%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뉴스를 왜 보고 싶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논쟁에 휘말리기 싫어서”(56%)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뉴스를 보면 기분이 나빠져서”(44%), “진실이 아니라서”(26%),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18%) 등이 뒤를 이었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고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지만 문제가 문제에서 멈추면 우리의 질문은 “세상은 왜 이 모양이지?”에서 멈추게 된다. 독자들은 뉴스를 내려놓고 깊은 한숨을 쉬게 될 것이다.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로 끝나는 기사가 언론의 할 수 있는 최선일까. 국회에서 문제를 해결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5년마다 한 번 대통령을 잘 뽑는 걸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미국의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사회 문제에 대응하는 엄밀한 취재 보도(rigorous reporting about responses to society’s problems)”라고 정의하고 있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한 증거에 기반한 보도 기법(not only spotlights the problems but follows an evidence-based presentation of existing solutions)”을 말한다.

다음은 덴마크 ‘컨스트럭티브 인스티튜트(Constructive Institute)’의 최고경영자 울릭 하게룹(Ulrik Haagerup)의 2017년 국제뉴스미디어총회(INMA) 발표 가운데 일부다.

“부정적인 뉴스는 무관심과 냉소를 부르고 사람들을 공개적인 토론에서 이탈하게 만듭니다. 저널리즘은 현실과 현실의 인식 사이의 필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널리즘은 사회가 스스로 교정할 수 있도록 돕는 피드백 메커니즘(feedback mechanism to help society self correct)이 돼야 합니다. 속보와 탐사 보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컨스트럭티브(constructive, 건설적인) 뉴스, 그리고 기회와 가능성에 대한 뉴스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의 데이빗 본스타인은 “언론이 문제만 이야기하고 문제 해결의 과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건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계속 혼만 내고 잘한 일에 대해서는 칭찬은 전혀 안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의료와 교육, 금융 등 정부 공공 부문에 대한 신뢰를 잃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비판과 폭로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히려 문제 중심의 보도가 독자들이 세상을 보는 필터를 왜곡하고 잘못된 결론으로 이끌 위험이 있다는 게 데이빗 본스타인의 지적이다..

울릭 하게룹도 비슷한 말을 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언론의 사명이지만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언론이 비판적 기사를 써야 한다는 건 오래된 신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더 많은 뉴스를 원한다는 믿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은 뉴스에 익사할 지경이죠. 누가 더 빨리 보도하느냐, 누가 더 호되게 비판하느냐의 경쟁을 멈추고 대안과 해법을 이야기할 때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덴마크의 언론학자 캐서린 질덴스테드는 ‘거울에서 행동으로(From Mirrors to Movers)’에서 언론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언론이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사실이 전달되는 과정에 주관과 판단이 개입된다는 걸 알고 있다. 언론이 앞을 비추는 등대 역할을 해야 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의제를 제안하는 문제 해결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언론이 감시견(Watch dog)의 역할에 머물렀다면 안내견(Guide dog)이나 구조견(Rescue dog)의 역할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물론 여전히 언론은 관찰자에 머물 뿐 현실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원칙론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언론인들도 있고 사냥개의 역할을 자처하는 언론인들도 있다.

전북대학교 교수 강준만이 지적한 것처럼 솔루션 저널리즘은 자칫 주창 저널리즘(advocacy journalism)이나 감상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애초에 솔루션을 찾겠다는 시도 자체가 단순화의 위험을 안고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손쉽게 감동적인 미담이나 영웅 만들기에 빠질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접근 방식은 언뜻 해법처럼 보이지만 독자들을 더욱 냉소 또는 방관하게 만들고 해법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든다.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이미나는 연구 보고서 ‘분노 산업을 넘어서: 국민 갈등 해소를 위한 솔루션 저널리즘의 실천’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의 목표는 명확하지만 그에 대한 정의는 여전히 미완성이고, 실천 방안들도 실험적인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비판적 기사에 길들여진 독자들의 외면 속에서 실패한 운동으로 잊혀질지 아니면 보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주류 저널리즘의 한 줄기로 자리잡게 될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이야기다. 이미나는 다만 “솔루션 저널리즘의 등장이 사회적 무기력증과 언론 불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우리 언론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가 2020년 6월, 100여 명의 언론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도 흥미롭다. 한 언론사 편집장은 “솔루션 저널리즘이 기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동기를 부여한다”고 답변했다. 여러 언론사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이 독자들의 인게이지먼트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답변했다. 다른 한 언론사 기자는 “뉴스에 지친 독자들이 뉴스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언론사의 3분의 1 이상이 수익이 늘어났다고 답변한 것도 흥미롭다.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에 대한 반응을 비교한 설문 조사도 있었다. 755명의 미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3가지 주제에 각각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와 통상적인 스트레이트 기사, 두 가지 유형의 기사를 보여주면서 어느 기사를 더 선호하느냐고 물었더니 “기사를 읽고 느끼는 바가 컸다”는 답변이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는 59%, 기존 방식의 기사는 22%에 그쳤다. “이런 주제의 기사를 더 찾아보고 싶다”는 답변도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52%, 기존 방식의 기사는 36%로 차이가 컸다. “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싶다”는 답변과 “이 기사를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고 싶다”는 답변이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는 각각 47%와 35%로 높게 나타났다. 기존 방식의 기사는 28%와 22%에 그쳤다. 같은 기사를 스토리텔링의 순서를 바꾸고 주제를 고쳐 쓰는 것만으로도 열독률이 크게 뛰어오르더라는 이야기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언론이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솔루션 포커스드 저널리즘(solution focused journalism)’이라고 할 수 있다. 해법을 이야기하는 저널리즘이라기 보다는 해법에 집중하는 저널리즘, 해법을 모색하는 저널리즘에 가깝다. 문제를 다루는 보도는 이미 넘쳐나니까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다루는 보도가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

‘리베라시옹’의 솔루션 저널리즘 섹션 ‘리베 데 솔루션(Libé des Solutions)’의 에디터, 디디에 푸르케리(Didier Pourquery)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전통적인 개념의 뉴스 전달에 소홀하지 않으면서, 단순 고발이나 문제 지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유용한 저널리즘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스파크뉴스(Spark News)’의 창업자 크리스티앙 드보와르동(Christian de Boisredon)은 “단순히 문제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검증된 제안들을 찾아내고 이를 전달함으로써 정보의 균형을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진민정은 “솔루션 저널리즘은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명칭으로 인해 마치 해법 제시가 언론인의 역할이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암묵적인 거부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진민정에 따르면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최초의 정의는 1998년 베네치가 “특정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보도”라고 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문제를 들추는 것에 머무르면서 누군가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보도가 아니라 문제를 지적하면서 더 나은 방향을 제안하고 누군가가 그 방향으로 함께 가주기를 희망하는 저널리즘”이라는 설명이다.

전북대학교 교수 강준만은 솔루션 저널리즘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연구 결과들은 언론이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것에만 머무르고 시민들이 취할 수 있는 대응 방안에 대해 침묵할 경우엔 시민들은 문제에 압도당한 채 무력감을 느껴 ‘사회로부터의 도피’를 택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또한 모든 문제의 책임은 정부와 공직자들에게만 있다는 인식을 강화시킴으로써 시민에게 권리 못지 않게 요청되는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 벌어져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을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솔루션 저널리즘이 ‘좋은 뉴스’나 ‘행복한 뉴스’를 추구하는 건 아니며, 곧장 사회 문제의 해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어떤 뉴스건 문제를 제기했다면 해결에 대한 고민도 담아야 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책임감을 불러 일으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행동을 끌어내자는 것이다.”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은 솔루션 저널리즘과 비슷한 개념으로 쓰이지만 방법론이라기 보다는 규범적 개념에 가깝다.

스페인의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 인스티튜트(Instituto de Periodismo Constructivo)의 설립자 알프레도 카사레스(Alfredo Casares)에 따르면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은 솔루션 저널리즘을 포괄하면서 시민의 참여와 사회적 토론을 이끄는 저널리즘이 필요하다는 제안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는데 하나는 복잡한 내러티브를 끌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복잡한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의 과정에 다양한 맥락을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좀 더 실용적인 아이디어로 출발했지만 솔루션 저널리즘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지금은 솔루션 저널리즘과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이 거의 동의어처럼 쓰인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크리스티앙 드 브와르동(Christian De Boisredon)은 솔루션 저널리즘이 자칫 문제를 소홀히 여길 수 있다고 보고 임팩트 저널리즘(impact journalism)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역시 문제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접근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좀 더 실질적인 영향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담은 개념이다. ‘스파크뉴스(Spark News)’는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솔루션 오리엔티드 저널리즘(solutions oriented journalism)’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해결 지향 저널리즘’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과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 임팩트 저널리즘, 포지티브 저널리즘, 평화 저널리즘 등은 모두 시민(civic) 저널리즘이라는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강준만은 솔루션 저널리즘이 갈등유발형 저널리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1990년대 초반 미국의 공공 저널리즘(public journalism)의 논의와 맞닿아있다고 설명했다. 공공 저널리즘은 언론이 시민의 참여와 토론을 진작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고 관찰자가 아니라 해결사로 나서야 한다는 이론이다.

버지니아커먼웰스대학교의 카렌 맥킨타이어(Karen McIntyre)는 “1990년대 유행했던 공공 저널리즘 운동이 대중의 참여를 강조했다면 솔루션 저널리즘은 갈등의 서사에서 해결의 서사로 뉴스 프레임을 전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 참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시민 참여가 공공 저널리즘의 전제 조건이었다면 솔루션 저널리즘은 시민 참여를 이끄는 저널리즘의 역할에 더 집중한다는 의미다.

강준만에 따르면 참여 저널리즘이나 네트워크 저널리즘이 기술 발달의 측면에 중점을 둔다면 공공 저널리즘과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은 저널리스트의 직업적 사명을 강조한다. 평화 저널리즘이 저널리스트들에게 역사를 재검토하고 점진적으로 그 과정을 살펴볼 것을 권장한다면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과 솔루션 저널리즘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부경대학교 이상기가 노르웨이의 평화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을 인용해 정리한 정의에 따르면 평화 저널리즘은 갈등을 보도함에 있어서 승자와 패자 의 양자 대결 구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류의 진보에 어떤 도전과 기회를 가져다주는지에 주목하는 방식을 말한다.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은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을 저널리즘에 접목하려는 시도다. 공동체의 민주적 토론과 시민의 참여를 강조하는 공공 저널리즘의 계보를 이으면서 문제에 대한 반응과 해결 과정에 집중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모두 솔루션 저널리즘과 맥락을 같이 한다.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이 솔루션 저널리즘을 포괄하는 개념처럼 보이지만 강조하는 지점이 다를 뿐 언론의 네거티브 편향을 극복하고 문제 해결의 과정에 집중하자는 큰 맥락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가 정리한 솔루션 저널리즘의 네 가지 요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에 대한 대응에 집중하고 그 대응의 효과를 다룬다. 둘째, 가장 좋은 솔루션 저널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인사이트를 담고 있는 취재 보도를 말한다. 독자들이 우리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또 참여할 수 있는 교훈을 담고 있어야 한다. 셋째, 솔루션 저널리즘은 철저하게 근거에 기반한 보도여야 한다. 해법을 제안하려면 그 해법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해법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를 설명해야 하고 그 영향을 데이터로 입증해야 한다. 정말 뛰어난 아이디어는 근거가 부족해도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언급하고 그럼에도 왜 이 아이디어가 뉴스 가치가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넷째, 반드시 한계를 지적해야 한다. 완벽한 해법은 있을 수 없다. 특정 지역에서 가능한 해법이 다른 지역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차이를 지적하고 콘텍스트 안에서 해법을 설명해야 한다.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기도 했다.

W : What response does it address? (어떤 대응이 문제를 해결하는가.)
H : How it works, the “howdunnit”. (어떻게 작동하는가. ‘누가 했느냐’보다 ‘어떻게 했느냐’에 집중하라.)
O : Offers insight. (인사이트를 제공하라.)
L : Includes limitations. (한계를 명시하라.)
E : Most important, provides evidence of impact.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의 증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WHOLE’ 스토리라는 건 단순히 사실 전달에 그치지 않고 전체 맥락을 살린 스토리라는 의미도 된다. 단편적인 이야기가 아닌 ‘모든’ 측면을 충실하게 담는다는 중의적인 의미도 될 수 있다. 어떤 반응이 문제를 바로잡는가, 그 반응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통찰력을 제공하는가, 한계를 반영하고 있는가, 변화의 증거를 제시하는가 등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성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험과 실패,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 결국 문제와 대응(response)에 대한 이야기가 돼야 한다. 해법이 아니라 대응이라는 단어를 쓴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응 또는 반응을 통해 해법에 근접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등학생들의 질문.

얼마 전에 대전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질문을 보내와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1.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은 일반 시민들 뿐만 아니라, 언론계 종사자들 가운데도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확산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 언론의 본령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죠.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고요.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를 펼쳐 놓으면 국회의원들이 몰려와서 해결해 줄까요? 대통령을 잘 뽑으면 해결될까요? 대학 교수나 전문가들, 또는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부탁해야 할까요? 일단 중요한 건 우리가 문제를 인식하는 것 못지 않게 문제 해결의 과정과 한계, 가능성 등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도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이죠.

2. 솔루션 저널리즘의 형태를 띠는 언론이 많지는 않은데, 이를 언론사에 적용하여 언론사에서도 솔루션 저널리즘의 형태를 띠는 기사가 많이 생산되려면 초기 단계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의 확산을 어떻게 시킬 수 있을까요?

= 저도 그렇지만 많은 기자들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의 판단이나 주장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보도해야 한다고 교육 받아왔고요.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기자도 사람이고 사실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사실을 선택하는 단계부터 주관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기자들이 현장에서 거리를 두는 건 필요합니다. 벽에 붙은 파리처럼 현장을 관찰해야 하지만 더 다가가면 위험할 때도 있습니다. 이를 테면 기자 개인의 이해 관계를 기사에 반영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는 일입니다.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라는 건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라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이나 판단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태도로 접근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이렇게 봤다, 이러이러한 이유에서다, 독자들은 다르게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하겠다, 이런 태도가 좀 더 공정한 보도 방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지금까지의 언론 보도와 다른 어떤 것이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언론이 해왔던 것들을 더 잘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문제를 드러내는 방식의 보도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해법을 찾는 과정까지 확장하는 보도를 해보자고 제안하는 건 전통적인 언론의 취재와 보도 기법으로 언론의 역할을 다 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기자들이 이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솔루션 저널리즘을 실험하고 실행하는 언론사가 늘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언론 보도가 잘못됐다고 보기 때문이 아니라 언론의 역할을 확장해 보자는 제안입니다.

3. 기자님의 책에서 언론이 광고와 결합하여 국민들에게 안 좋은 인식을 심어주며 광고주의 정치적, 사회적 개입이 반영될 수 있고, 이는 곧 언론사의 수익 하락으로 나타난다고 하셨는데요. 언론이 광고와 결합되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 부족한 수익을 채울 수 있을까요?

= 이미 신문이나 방송은 광고 플랫폼으로서 가치를 잃었습니다. TV 뉴스는 시청률이 매우 낮고, 신문은 구독률이 급격히 줄고 있죠. 열독률이 과거의 10분의 1, 100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주요 신문사들은 광고 의존도가 전체 매출의 90%에 육박합니다. 이처럼 광고 효과도 없는데 광고를 받기 위해서는 광고 이외의 다른 거래가 필요합니다. 광고를 받고 기사를 삭제하거나 고쳐주는 등의 거래 말이죠. 눈치 보고 잘 써주는 경우도 흔하죠. 제가 보기에는 이런 기형적인 광고 시장은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이미 다 무너졌는데 한국만 아직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뉴스 기업이 구독 비즈니스로 옮겨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 다른 나라들은 뉴스 콘텐츠 유료화가 상당히 진행돼서 무료로 뉴스를 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미 2014년부터 구독 매출이 광고 매출을 넘어섰고요. 구독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다른 나라들 사례를 보면 한국처럼 네이버와 카카오에 공짜 뉴스가 넘쳐나는 나라가 오히려 예외적입니다. 한국도 결국 뉴스를 돈 내고 봐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언론사들은 그 과정에서 도태될 것입니다. 뉴스타파는 유료 구독 모델은 아니지만 후원자가 3만 명이 넘고 월 후원금이 4억 원에 육박합니다. 한국에서도 구독 기반의 뉴스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고 더 늘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언론사는 살아남기 어렵게 되겠죠.

4. 기성 언론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을 도입하려고 할 때 무슨 준비가 필요할까요?

해외 언론사들 사례 조사를 해보니 어느 언론사든 처음에 도입이 쉽지 않습니다. 나이 든 기자들일수록 설득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실제로 수십 년 동안 반복돼 왔던 익숙한 시스템을 버리기는 어렵죠. 기자들이 이런 것까지 해야 돼? 라고 말하는 언론사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습니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첫째, 솔루션 저널리즘을 이해하는 열정적인 기자들이 회사를 설득해야 합니다. 둘째, 이들을 이해하는 데스크 편집자가 필요하고요. 셋째, 시간과 인력을 확보해야겠죠. 날마다 쏟아지는 사건을 취재하느라 정신 없는데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해보겠다고 사람을 빼야 하기 때문이죠. 우선 순위를 조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왜 이런 프로젝트가 필요한지 스스로 확신이 있어야겠죠. 이미 해외에 사례가 많습니다. 한국에서 솔루션 저널리즘 이야기를 하면 여전히 막연하게 느껴지는데 일단 한국에서도 사례가 늘어나고, 이런 거 우리도 한 번 해보자, 이런 분위기가 되면 급속히 확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5. 미국의 경우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산하 기업들이 솔루션 저널리즘을 시도하려는 언론사에 대해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식으로 솔루션 저널리즘의 시도가 이루어져야 할까요? 또 이와 같은 지원으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개입이나 압력이 발생하지 않을까요?

세 가지 질문을 뒤에서부터 답변해 보겠습니다.
첫째, 모든 돈에는 꼬리표가 붙죠.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비영리 재단과 후원 제도가 굉장히 오랜 시간을 두고 발전해 왔습니다. 돈을 낸 사람이 재단의 운영에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안전 장치도 많고요.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비영리 재단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둘째, 한국에서도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 같은 비영리 재단을 만들어 볼 수 있을 텐데 기금 조성이 관건이겠죠. 미국에서는 빌 게이츠와 록펠러 재단 등이 돈을 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자들에게 의존하는 모델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조건 없이 후원을 한다면 안 받을 이유가 없죠. 그 보다는 언론사들의 협업 모델이나 스타트업 모델로 시작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취재하러 다녀온 체코나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도 후원과 구독 기반의 솔루션 저널리즘 언론사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셋째,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에서 언론사를 지원할 때 금액은 원화로 300만~5000만 원 정도입니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그리 큰 금액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한두 사람을 서너 달 정도 투입할 수 있는 인건비가 되기 때문에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실험을 할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됩니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일단 지원자를 받고 선정되면 지원금을 주고 기사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개입한다고 해서 언론사들이 기사를 고치거나 방향을 수정하거나 하지는 않겠죠.

6. 기자님의 책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은 누가 하였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였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과정만 기사에 담으면 그것이 솔루션 저널리즘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가 궁금합니다!

제가 책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은 사람 보다는 해법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었죠. 그 해법이란 것도 철저하게 해결의 과정을 기록해야 하고 적당히 해법처럼 보이도록 포장해서는 안 된다는 게 중요합니다. 복제 가능성과 확장 가능성이 핵심입니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고 그런 아이디어를 그대로 따라하면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곳에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찾는 건 문제를 해결하는 히어로가 아니라 우리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매뉴얼입니다. 이걸 찾는 게 솔루션 저널리즘이란 거죠.

7. 이번에 다녀오신 취재 과정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의 해외 사례를 많이 보고 오셨나요?

체코의 트랜지션이라는 언론사는 아직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동부 유럽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언론인들을 교육하는 일을 합니다. 솔루션 저널리즘 방법론을 알려주기도 하고요. 체코의 경험이 모로코나 슬로바키아의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스페인의 컨스트럭티브인스티튜트는 대학교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학생들과 함께 솔루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니스마텡이라는 언론사는 한때 경영 부실로 회사가 문을 닫을 상황이었지만 솔루션 저널리즘 섹션을 만들면서 후원회원이 늘어 지금은 직원 200명의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최근에 쓴 기사는 프랑스의 물 부족 문제를 다뤘는데 핵심은 프랑스 대도시에 아스팔트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빗물이 하수구로 빠져 나가고 지하수로 스며들지 않으니 도시 아래는 사막처럼 말라간다는 거죠. 그래서 내놓은 해법은 아스팔트를 걷어내지는 못하더라도 빗물이 도시 아래로 스며들도록 흙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해외 사례와 여러 실험과 실패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언론사는 구독자들에게 한 달에 세 건의 기사 아이템을 소개하고 투표를 통해 이 가운데 하나를 선정해서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기사를 쓴다고 합니다.

8. 학생의 입장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해 널리 알리고 이러한 기사 글 쓰기 문화를 알리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권력의 비리를 폭로하거나 아무도 모르는 엄청난 비밀을 찾아내거나 세상을 발칵 뒤집는 특종 보도는 여전히 언론사 기자들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우리 주변의 해법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제가 쓴 책에 나온 사례지만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대학교(UBC)는 학생들의 83%가 개인 물병을 들고 다닙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하죠. 학교 곳곳에 워터필즈(WaterFillz)라는 수돗물 정수기를 설치했는데 물을 한 컵을 따를 때마다 생수병을 얼마나 절약했는지 누적 집계가 전광판에 표시됩니다. 이 학교에서는 한 시간에 87명이 이 정수기를 이용하는데 5년 동안 100만 병을 줄였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당장 우리 학교에서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겠죠. 우리 주변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행동을 바꾼 건 업데이트되는 숫자, 그리고 우리의 작은 행동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빈부격차나 물가상승 같은 큰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아주 작은 변화를 만드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죠. 기후변화는 어려운 문제지만 일회용품을 줄이는 아이디어는 우리 삶의 가까이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9.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단어가 대중들이 접할 때는 그 뜻을 단번에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글쓰기 형식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마디로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비명을 지르고 해법은 속삭인다고 하죠. 세상은 문제로 가득 찬 것 같지만 문제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냉소하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문제를 들춰내는 걸 넘어 해결 방법을 찾는데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는 게 솔루션 저널리즘의 접근 방식입니다. 세상은 저절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죠.

10. 솔루션 저널리즘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어떠한 정책적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정부가 언론에 개입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정부의 지원도 부정적인 효과를 만들 수 있구요. 다만 정부는 저널리즘 생태계가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좋은 콘텐츠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규모가 큰 언론사들에 정부 광고를 지원해서 시장을 왜곡하는 일을 중단해야 하고, 신문사들의 발행 부수 조작을 엄격히 처벌해야 하고, 종합편성 채널의 특혜를 축소해야 하고 등등 몇 가지 원칙적인 개혁이 필요할 것입니다.

11. 솔루션 저널리즘을 지역에서부터 시작하자고 하셨는데, 지역사회 시민이 기여할 수 있는 바는 무엇이 있을까요?

문제도 지역에 있고 해법도 지역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여기서 지역이란 서울의 반대말이 아니라 서울에도 지역이 있고 동네가 있죠. 행정 단위가 아니라 현장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역에 살고 있는 것이죠. 솔루션 저널리즘이 한국 사회에 자리 잡으면 전국에 솔루션 저널리즘 워크숍을 1000개쯤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주제를 정해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 언론인들이 함께 해법을 이야기하는 모임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12. 한국 언론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론의 사명은 결국 더 많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계속 고민하고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인가 찾고 계속해서 의제를 제안하고 토론을 만들어야 합니다. 감시와 비판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다른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감시와 비판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해결 지향 보도를 위한 체크리스트.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솔루션 저널리즘 가이드라인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단순히 사건 보도를 넘어 컨텍스트를 제공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독자의 관여를 늘리고 임팩트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본스타인은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도록 하려면 이들이 기회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독자들에게 아이디어를 불어넣고 직접적인 행동을 끌어내는 취재 보도 방식이다. ‘나도 할 수 있겠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스타인은 “저널리즘적 감각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능력을 사람들이 어떻게 문제에 대응하고 어떤 결과를 얻고 있으며 어떻게 그런 결과를 얻게 됐는지 그 과정에 대해, 그리고 그런 노력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쓰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기자들에게 솔루션 저널리즘을 설명할 때 굳이 강박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강조하곤 한다. 여기까지가 솔루션 저널리즘이고 여기서부터는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니다, 이런 경계나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문제 해결을 강조할 때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몇 가지 포인트를 제안할 수는 있다. 취재와 데스킹 과정에서 이런 포인트들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살펴보거나 시스템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가 제안하는 10가지 체크 포인트를 한국 상황에 맞게 풀어 쓴 것이다.

첫째, 문제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가. 잘 알려진 문제가 아니라면 문제의 원인을 먼저 설명하는 게 좋다. 독자들이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문제에 대한 관련 반응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가. 문제에 대한 대응이나 해법을 다루지 않는다면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를 수 없다.

셋째, 문제 해결과 해결책 실행의 구체적인 방법까지 파고 들고 있는가. 매우 구체적인 수준까지 문제 해결 과정을 파고 들어야 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그래서 탐사 저널리즘이 될 수도 있고 데이터 저널리즘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열정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고등학생들의 학교 중퇴를 막기 위한 노력을 취재한다면 실제로 어떤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게 어쩌다 한 번 가능한 변화였는지, 구조적인 변화가 가능한 것인지 등을 검증해야 한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독자들이 드라마 〈하우스〉(House)나 〈CSI 과학수사대〉처럼 질문에 빠져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사를 끝까지 읽을 때까지 긴장을 놓치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넷째, 문제 해결이 기사의 핵심인가. 솔루션 저널리즘도 다른 저널리즘 취재 보도와 마찬가지로 캐릭터가 있고 이들의 도전과 실험, 성공, 실패로 기사가 구성된다. 내러티브가 호기심을 끌고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다면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이런 내러티브를 극대화하는 전략 가운데 하나가 복잡한 문제를 규정하고 이 문제의 원인과 구조를 분석하고 해법에 접근하는 과정을 풀어놓는 것이다.

다섯째, 문제 해결과 관련된 증거를 보여주고 있는가. 기자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만 무엇이 최선의 해법인지 판단하고 그 근거를 설명해야 한다. 저소득 계층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해법을 찾고 있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정말 새로운 해법인가? 비용 대비 효율적인 방식인가? 현실적인 해법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설명은 근거다. 직접 사례를 제시할 수도 있고 데이터와 통계로 입증할 수도 있다. 그럴 듯해 보이는 해법이지만 근거가 부실할 수도 있다. 잠정적이거나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과장하지 않는 것이다. 근거가 부실하다면 부실한대로, 가능성의 차원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정확하게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 나중에라도 새로운 근거가 확보된다면 그 근거가 해법을 보완하는 것인지 부정하는 것인지 후속 보도가 필요할 수도 있다.

여섯째, 한계를 설명하고 있는가. 솔루션 저널리즘을 이야기할 때 계속 강조하는 건 완벽한 해법 같은 걸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해법에는 기회비용과 한계, 불확실성, 위험이 있다. 너무 많은 비용이 들거나 어쩌다 가능한 사례는 해법이 아니다. 어떤 특별한 조건에는 작동하지만 다른 조건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손에 잡히는 해법이 툭 튀어나온다면 애초에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가슴을 뛰게 하는 건 해법에 접근하는 과정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실패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지표를 확인하면서 한계와 가능성을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솔루션 저널리즘 보도가 될 수 있다.

일곱째, 통찰력과 교훈을 전달하고 있는가. 솔루션 저널리즘의 매력은 발견의 기회에 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준다. 독자들을 관찰자나 방관자로 내몰지 않고 문제 해결에 참여하도록 끌어낸다. 세상을 바꾸는 건 거대 담론이나 정치적 결단이 아니라 통찰과 발상의 전환, 그리고 실험과 개선이다. 이를테면 한 병원에서 인공 호흡기를 부착한 환자들의 침대 높이를 적정 수준으로 높이도록 마스킹 테이프로 위치를 표시했더니 인공 호흡기를 통한 감염 사고가 줄어 들더라는 사례 같은 것들이다. 이런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만든다.

여덟째,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거나 미화하고 있는 건 아닌가. 솔루션 저널리즘의 가장 큰 위험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단순히 따뜻하고 훈훈한 뉴스, 기분 좋은 뉴스로 변질될 가능성이다. 누군가를 치켜세우거나 특정 조직이나 기업, 정당 등을 추어올리는 보도는 해법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아홉째, 전문가가 아닌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용적인 통찰에 기반하는가. 교수나 연구원, 변호사 같은 전문가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현장에서 문제를 부딪히는 사람들이 해법에 가장 가까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에서 실용적인 통찰을 얻는 경우가 많다.

열째, 사람이 아니라 해법과 과정에 집중하고 있는가. 부정 편향을 극복하자는 이야기가 밝고 따뜻한 뉴스를 따라 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것은 저널리즘의 사명과 거리가 멀다. 자칫 현실을 단순화하거나 왜곡할 수도 있고 비현실적인 기대를 조장할 수도 있다.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에 맞서고 있는지, 무엇을 바꾸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에서 통찰을 끌어내는 것이 솔루션 저널리즘이다.

데이빗 본스타인은 “솔루션이 아니면서 솔루션인척 포장하는 가짜 솔루션을 경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적당히 솔루션 저널리즘을 흉내내는데 그치는 건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어쩌다 한 번 가능한 사례가 아닌가?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려면 탐사 보도 이상으로 깊이 있는 취재가 필요하다. 단순히 ‘이것은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다’, ‘또는 아이들을 도웁시다’, 이런 말을 늘어놓는 걸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나?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고 확신하나? 검증된 결과가 있나? 성공 요인이 무엇인지, 어쩌다 한 번 우연히 가능한 사례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계는 무엇인지, 비용이 너무 크지는 않은지, 정치적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확인을 해야 한다. 흑인 학생들의 중퇴율을 줄이려는 교사의 이야기, 또는 유아 사망률을 줄이려는 공무원의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와 함께 일하는 저널리스트들의 가장 큰 요청은 어떻게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문제를 가볍지 않게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을 해달라는 거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이를테면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고등학교 중퇴율이 가장 낮은 도시는 어디인가. 어느 병원이 대기 시간이 가장 짧은가. 저소득 환자에게 건강 검진을 받게 만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10대 흡연을 막는 가장 성공한 정책은 무엇인가. 흑인과 백인의 졸업률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한 학교가 있는가. 솔루션 저널리즘 툴 킷(took kit, 도구 상자)에서는 이런 질문들을 ‘긍정적인 일탈(positive deviance)’이라고 부른다.

클리블랜드플레인딜러라는 신문이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납 중독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다룬 시리즈 기사는 ‘긍정적 일탈’의 중요한 사례다. 로체스터가 어린이 납 중독 비율을 80% 이상 떨어뜨린 데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납 중독을 치료하는 데 사후적으로 돈을 쏟기 보다는 납 중독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는 빈민층 거주 임대 주택 단지를 중심으로 검사를 시작하고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 기사는 간단하지만 확실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사례를 제시하고 다른 도시와 비교해 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면서 동기를 부여한다. 이 경우는 모든 지역을 검사하는 게 아니라 특정 지역을 찍어서 검사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구체적으로 숫자를 들어 성과를 입증하고 단순히 개별 사례에 그치지 않고 다른 도시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퍼블릭라디오인터내셔널(PRI)이 보도한 샌프란시스코의 산전 검진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도 흥미롭다. 샌프란시스코는 1999년부터 임신부들을 한 달에 한 번씩 불러모아 집단 진료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병원 접근성이 낮은 이주 여성들이 대상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석한 임신부들은 자연 분만과 모유 수유 비율이 높고 조산 비율은 낮았다. 산후 우울증도 줄어들었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의 공립 병원 대부분이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시애틀타임스의 교육 혁신 시리즈 기사는 문제 해결 과정을 추적하는 솔루션 저널리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시애틀타임스는 2013년부터 고등학교 중퇴 비율을 낮추고 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에듀케이션 랩’을 설립하고 다양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대학 강의를 고등학교에 도입하거나 지역사회 현안을 놓고 토론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지역 사회와 언론이 공동으로 실험하면서 시행착오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훌륭한 아이디어의 확장성(scalability)과 복제 가능성(replicability)은 솔루션 저널리즘의 핵심이다. 영웅 스토리나 하나의 미담에 끝나지 않으려면 다른 문제를 겪고 있는 곳에서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노하우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데이터로 입증돼야 한다. 한 번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구조의 개혁을 끌어낼 수 있는 본질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하고 실패의 경험과 위험 요소까지 충분히 담고 있어야 한다.

확장성과 복제 가능성이 핵심이다.

카이저헬스뉴스가 보도한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카운티의 사례는 지역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교도소 수감자의 20%가 정신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노숙하거나 우울증을 겪고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갇힌다. ‘값 비싼 회전문’이었다. 샌안토니오 카운티는 정신 건강 및 약물 남용 대책과 노숙자 서비스를 통합하고 치료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샌안토니오 카운티의 문제의식은 간단했다. 감옥을 늘리는 것보다 이들이 감옥에 가지 않도록 치료하는 것이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마다 1만 8000명 이상의 환자들이 48시간의 응급 입원과 90일의 회복 프로그램 등을 이용한 결과 정신질환 범죄가 크게 줄어들었고 해마다 1000만 달러 이상을 절약하게 됐다. 지금은 미국 전역에서 샌안토니오 카운티의 사례를 연구하러 찾아온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결과가 무엇인가 보다 어떻게 그런 결과를 얻었느냐에 집중한다. 본스타인은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사례를 취재하면서 60개의 어떻게(how)라는 질문을 준비했다고 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이 수많은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전문가에게 묻기 보다는 현장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 개인을 부각시키지 않되, 이들의 경험을 최대한 자세히 풀어내야 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단순히 좋은 뉴스(good news)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희망을 갖고 새로운 것과 더 나은 것과 다른 것을 찾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본스타인은 “단순히 멋진 이야기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숫자로 입증해야 하고 계속해서 검증해야 한다. “완벽하게 완성된 솔루션은 있을 수 없다. 노력과 결과가 있고 저널리스트들은 이를 계속 보도하고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특정 솔루션을 대변하는 것은 위험하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도입하려는 언론사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편집국 또는 보도국의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솔루션 저널리즘에 배분할 것인가다. 본스타인은 “언제나 마감 시간에 쫓기지만 기자들에게 한 번 더 본질적인 해법을 고민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험이 쌓이면 예전에 하지 않았던 질문을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솔루션 저널리스트로 성장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퍼블릭라디오인터내셔널의 마이클 스콜러는 “가장 어려웠던 건 해법엔 관심이 없고 문제 자체에 집중하는 기자들의 문화였다”면서 “문제나 갈등 보다는 대안에 집중하도록 하는 본능의 변화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페이엇빌옵서버의 마이클 아담스는 “데스크가 솔루션 저널리즘에 매우 회의적이었느지만 첫 번째 기사를 쓴 뒤에 완벽하게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애틀타임스의 캐시 베스트는 “우리는 독자들과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혼란을 느끼거나 망설이곤 했다. 그러나 솔루션 저널리즘이 기사 작성의 새로운 대안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기사에 자신감이 붙었다. 문제에 기반한(problem-based) 기존의 기사 작성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도를 추가하라는 의미에 가깝다. 단순히 사실을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지역에서 더 나은 대안을 실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의미다.”

코퍼스크리스티콜러타임스의 브로 크리프트는 “일단 시작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데스크가 계속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타일러모닝텔레그래프의 앨리슨 폴란도 “시도해서 나쁠 건 없다”면서 “독자와 기자들이 싫어한다면 그만 두면 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그는 “초기 취재 기획 단계부터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사실 보도를 넘어 가능한 대안이 무엇인지, 어떤 형식으로 보도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브로 크리프트의 설명이다. “우리는 그동안 당뇨병의 비용이나 조직 범죄에 대한 기획 기사 등에 솔루션 저널리즘을 적용해왔다. 이런 기획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다른 지역에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해법이 없다면 완결된 기사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취재 기자가 기초 취재로 확보한 사실을 근거로 연재 기사의 윤곽을 잡는다. 그리고 이 가운데 일부가 솔루션 저널리즘에 할당된다. 조직 범죄에 대한 연재 기사의 경우 취재 기자에게 이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는 지역을 구체적으로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정환의 ‘문제 해결 저널리즘’에 실린 원고 가운데 일부입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규정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2015년 3월 24일 아침 10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독일 뒤셀도르프로 출발한 저먼윙스(Germanwings) 9525편이 출발 40여 분만에 추락했다. 승객 144명과 승무원 6명이 모두 사망했다. 이 비행기는 고도 1만 1600km 상공에서 갑자기 하강하기 시작해 10여 분만에 시속 640km 속도로 땅에 곤두박질쳤다. 관제소의 비상 연락도 받지 않았고 프랑스 공군이 부랴부랴 출동했지만 추락을 막지 못했다.

반복되는 문제, 프로토콜을 바꿔야 한다.

블랙박스를 확인한 결과 부기장 안드레아스 루비츠(Andreas Lubiz)가 고의로 비행기를 추락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자살 비행이었다. 기장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조종실 문을 걸어 잠그고 수동 운전으로 고도를 끌어내린 것이다. 기장이 계속 문을 두드리고 마지막에는 강제로 부수려고 했으나 2001년 9.11 테러 이후 보안이 강화된 덕분에 출입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사 결과 부기장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전 비행에서도 기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비행기를 고의로 추락시키는 데 필요한 계기판 작동을 테스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부조종사의 우울증이 아니고 화장실을 다녀온 조종사의 책임도 아니다. 이런 위험을 차단할 수 없었던 시스템이 문제였다.

이 사고 이후 유럽에서는 비행기 조종실에 언제나 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걸 새로운 원칙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기장이나 부기장이 화장실을 다녀오려면 반드시 승무원이 한 명 조종실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 갑자기 기장이나 부기장이 자살 비행을 감행하거나 정신 발작을 일으키거나 어떤 다른 이유로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어떤 경우든 조종실에 혼자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만든 것이다.

눈여겨 볼 부분은 우리가 항공기 사고를 다루는 방식이다. 항공기 사고는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상업용 비행기 사고는 100만 건당 0.37건, 1억 명 중에 2명 꼴이다. 2003년 연구에서는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은 자동차 사고로 죽을 확률의 65분의 1 정도다. 미국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이 2013년 기준으로 하루 90명, 1년이면 3만 2719명에 이른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자동차 사고는 슬프지만 피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는 항공기 사고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사고로 죽는데도 말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미국의 온라인 신문 복스(VOX)는 중앙 정맥관(central venous catheter) 감염 사고를 다룬 기획 기사를 내보내면서 항공기 사고와 자동차 사고의 차이를 설명했다. 항공 산업에는 어쩔 수 없는 사고라는 게 있어서는 안 된다. 100만 분의 1이라도 기장이 없는 사이에 자살 비행이 벌어질 수 있다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자동차 사고처럼 날마다 어디선가 있을 수 있는 사고라고 생각하면 이런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답을 찾아나가면 크든 작든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 항공기 사고처럼 받아들이느냐 자동차 사고처럼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대응도 달라지게 된다. 복스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15년 전 미국의 병원들은 이 문제를 자동차 사고처럼 다루는 병원과 비행기 사고처럼 다루는 병원으로 나뉘어 있었다.”

흔히 카테터라고 부르는 중앙 정맥관은 정맥을 통해 약물을 심장까지 전달하는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다. 병원에 입원하면 거의 모든 환자들이 일단 카테터를 정맥에 심는 것부터 시작한다. 문제는 카테터가 박테리아에 감염되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13년 미국에서만 9997건, 1990~2010년 사이에 50만 건 이상의 카테터 감염 사고가 있었다. 오랫동안 미국의 의사들은 카테터 감염이 자동차 사고처럼 끔찍하지만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고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도 대학의학회에 따르면 1년에 8만여 건의 카테터로 인한 혈류 감염 사고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가운데 35%가 치명적인 상황까지 가게 된다. 해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카테터를 삽입하는 시술을 받는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카테터 감염 사고로 죽는다.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동차 사고처럼 환자의 불행을 다뤘던 게 현실이다.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의사 피터 프로노보스트(Peter Pronovost)는 지난 2001년 화상으로 입원한 생후 18개월 환자의 사망 사고를 조사하다가 카테터 감염 위험을 사전에 예방할 수도 있겠다는 가설을 세우게 됐다. 이 아기는 비교적 가벼운 2도 화상으로 입원했는데 치료를 받던 도중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상당 부분 회복된 상태였으나 카테터 감염으로 합병증을 얻은 것이다. 미국 병원에 카테터 감염에 대한 지침이 없었던 건 아니다. 미국 CDC(질병 통제 및 예방 센터,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는 카테터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90가지 지침에 대한 150페이지짜리 문서가 있다. 그러나 어떤 지침이 가장 중요한지 우선 순위가 없었고 나열만 해놓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프로노보스트는 가장 효과적이고 위험이 적은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만든 게 5가지 항목의 점검표였다. 사실 대단한 것도 아니다. 첫째, 카테터를 만지기 전에 비누나 알코올로 손을 씻을 것. 둘째, 멸균 장갑을 끼고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가운을 입을 것. 셋째, 환자를 멸균 드레이프로 완벽하게 감싸고 카테터를 사타구니 근처에 놓지 말 것. 넷째, 클로르헥시딘(chlorhexidine) 소독제로 상처를 소독할 것. 다섯째, 카테터가 더 이상 필요없게 되면 곧바로 제거할 것 등이다.

프로노보스트는 동료 의사들이 이런 5가지 지침의 30%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게다가 문제는 이 간단한 다섯 가지 지침을 따르려면 병원의 이곳저곳을 여덟 군데 이상 들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노보스트는 필요한 모든 물품이 담긴 카트를 집중 치료실에 들여놓기로 했다. 그리고 간호사들에게는 체크리스트를 따르지 않는 의사가 있으면 보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많은 병원에서 의사는 간호사보다 강력한 권력을 갖는다. 간호사가 의사에게 뭔가를 요청하거나 권고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관건은 권력 관계를 뛰어넘어 작동하는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었다. 의사들의 반발이 있긴 했지만 프로노보스트가 만든 체크리스트는 작동했고 놀랍게도 카테터 감염 사고가 3개월 만에 50% 줄었다. 6개월이 지나자 70%가 줄었다.

프로노보스트는 이 체크리스트를 다른 병원들에 추천했고 미시간주에 있는 100개의 병원 가운데 60개 병원이 동참했다. 간호사들에게 카테터를 올바르게 삽입하는 4시간짜리 훈련을 실시했고 프로토콜을 따르지 않는 의사에게 조언을 건네는 방법도 매뉴얼로 만들었다. 병원마다 달마다 늘 한두 차례 감염 사고가 발생했는데 프로토콜을 바꾸고 난 뒤 한 건도 없는 달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병원 체인인 보몬트헬스시스템(Beaumont Health System)의 로버트 웨일즈는 복스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의사가 프로토콜을 따르지 않을 때 간호사가 중단시켜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면서 “반발이 없지 않았지만 수술실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의사 소통 방식이 바뀌는 걸 확인하고 이것이 작동할 거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실험에 참여한 의사들은 “문화를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용이 아니라 예방과 개선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프로토콜이 자리잡으면서 미국에서 카테터 감염 사고는 2008년에서 2013년 사이 46%나 줄어들었다.

항공기 사고와 자동차 사고, 대응 방식의 차이.

복스는 단순히 카테터 감염 사고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꿀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에 집중했다. 노라 보스트롬 (Nora Boström)은 임신 25주에 태어난 조산아였다. 체중 0.6kg의 미숙아로 태어나 4개월 동안 인큐베이터에서 자랐다. 비교적 건강했지만 폐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아 세 살 때까지 고혈압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의사가 노라에게 레모듈린(Remodulin)이라는 정맥 주사를 처방하면서 아이의 부모가 직접 약물을 투입할 수 있도록 카테터를 삽입하고 약물을 투입했다.

며칠 뒤 노라는 급성 열병을 앓기 시작했고 응급실 의사들이 카테터를 제거했을 때는 이미 수많은 고름이 차 있는 상태였다. 나중에 조사 결과 간호사들이 손을 씻지 않은 상태에서 카테터를 만지거나 장갑을 끼고 난 뒤에 침대 난간을 만지는 등의 많은 실수가 발견됐다. 카테터 대신에 피하 주사 형태로 약물을 주입했지만 노라의 상태는 계속 나빠졌다. 폐와 심장이 크게 손상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노라는 결국 패혈증으로 숨졌다. 복스는 “카테터 감염이 아니었더라도 노라가 살아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면서도 “면역력이 약하고 만성 질환을 겪고 있는 노라 같은 환자들은 카테터 감염이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노라가 입원한 병원은 어린이 병원 중에서도 시설이 좋기로 유명한 병원이었고 카테터 감염도 다른 병원보다 적은 편이다. 그러나 이 병원은 카테터 감염을 비행기 추락 같은 심각한 사고라고 보지 않았고 불행하지만 자주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 같은 성격으로 받아들였다. 노라의 부모들은 병원에 의료 과실 책임을 물었지만 병원은 “카테터 삽입은 감염 위험이 있고 완전히 위험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병원은 노라의 부모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고 결국 소송으로 갔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 교훈은 가벼운 실수가 치명적인 사고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정맥에 주사 바늘을 꽂는 간단한 작업이지만 프로토콜을 따르지 않을 경우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한다. 두 번째 교훈은 실수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병원은 이 끔찍한 비극을 자동차 사고처럼 다뤘고 문제를 바로 잡을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노라가 죽은 병원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로즈빌메디컬센터는 달랐다. 이 병원은 2005년에 11건의 카테터 감염 사고가 있었다. 다른 병원과 비슷한 정도였지만 이 병원은 프로노보스트의 체크리스트를 참고해서 시스템을 바꾸기로 했다. 이 병원은 간호사들이 일상적으로 하던 카테터 삽입을 전면 중단 시키고 별도의 혈관 시술팀(vascular access team)을 신설했다.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작업은 아니지만 철저하게 프로토콜을 지키기 위한 변화였다. 놀랍게도 그 뒤 7년 동안 이 병원에서는 단 한 차례의 카테터 감염 사고도 없었다.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이 병원의 시스템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복스의 표현에 따르면 의료 사고를 자동차 사고가 아니라 항공기 사고처럼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7년 만에 카테터 감염 사고가 다시 발생했을 때 이 병원 스탭들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다시 점검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심장 투석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이 외부 용역 업체 소속이었고 장비도 다를 뿐만 아니라 이 병원의 매뉴얼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용역 업체 소속 간호사들도 동일한 훈련을 받게 됐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무시하거나 외면했던 문제들.

문제를 정확하게 규정하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해법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 이 기사는 카테터 감염 사고라는 특정한 영역의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과 과정 그리고 시스템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를 준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문제를 어쩔 수 없는 일로 방치하고 있지 않은가? 비행기 사고는 끔찍하지만 자동차 사고도 결코 가볍지 않다. 훨씬 더 자주 일어나고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많다. 이것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무시하거나 외면했던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구조와 문화를 바꾸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의료 전문 인터넷 신문 청년의사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2013년 이후 의료 관련 감염 가운데 혈류 감염이 43%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중환자실에서는 혈류 감염이 치명적이다. 극단적으로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혈류감염으로 죽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이 신문에 따르면 중환자실 감염률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지만 혈류 감염은 줄어드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더디다. 미국과 독일, 일본에서는 인공 호흡기 관련 감염률이 높은데 한국은 여전히 카테터 관련 혈류 감염률이 높다. 이 신문은 “만약 정부에서 감염률에 따라 보험급여를 제한한다면, 감염률 0% 병원들이 속출할 것”이라면서 “병원들이 카테터 감염 비율을 아예 기록조차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현상을 숨기고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 신문은 또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미국과 달리 간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수가 등을 결정할 경우 병원 현장의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신문은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아산병원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는 데 그쳤다. “아산병원도 2012년 이후 C-라인 감염 관리, 즉 혈류 감염 관리를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펼쳐 왔다. 2012년 C-라인 패키지를 도입하고, 2013년에는 C-라인 소독횟수 근거 등을 마련했으며, 2014년에는 C-라인 번들 적용범위를 확대했다. 이후 2015년에는 정맥주사팀 C-라인 드레싱 전담팀을 운영하고, 지난해에는 클로르헥시딘이 함유된 테가덤을 도입했다. 이런 활동들에 힘입어 감염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좋은 기사지만 안타깝게도 이 기사를 읽은 독자들에게는 단순히 아산병원이 좋은 병원이라는 것 외에 어떤 메시지도 줄 수 없다. 전문지의 특성이겠지만 읽고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단어가 많다. 의료 현장의 의료진에게는 의미있는 울림을 던지는 기사일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다음은 아툴 가완디의 설명이다.

“우리는 단순한 문제들에 둘러싸여 있다. 의학에서는 카테터를 삽입할 때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든지 심혈관 모니터에 일직선으로 가로줄이 나타나는 심장마비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칼륨 과잉 투여라는 것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든지 등이 바로 단순한 문제에 속한다. 법률 업무에서는 탈세 사건을 변호하는 주요 방법을 모두 기억해 내지 못했거나 다양한 법정의 마감 시간을 잊어버렸을 때 이런 단순한 문제가 생긴다. 경찰 업무에서는 목격자가 용의자의 얼굴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줄로 정렬시키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목격자에게 줄을 선 사람들 중에 용의자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깜박 잊어버리고 하지 않았거나 목격자가 있는 자리에 용의자와 안면이 있는 사람을 동석시키는 등 단순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체크리스트는 이처럼 기본적인 실수를 막을 수 있도록 해준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이렇게 단순하고 이렇게 간단한 아이디어로 해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캐나다 요크대학교 교수 브렌다 짐머만(Brenda Zimmerman)은 세상의 수많은 문제들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간단한 문제와 복잡한 문제, 복합적인 문제다. 이를 테면 케이크를 굽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문제다. 달에 로켓을 보내는 건 복잡한 문제고, 아이를 키우는 건 복합적인 문제다. 로켓을 쏘는 건 복잡하지만 한 번 성공하고 나면 그대로 반복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다르고 날마다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무엇보다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체크리스트가 필요한 것이다.

그들을 괴물로 만드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괌에서 한국인 판사 부부가 아이들을 차량에 방치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현직 판사인데다 아버지가 유명 로펌 변호사라 더욱 화제가 됐던 사건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괌 판사 부부 사건.

2017년 10월 3일의 일이다. 휴가를 내고 괌에 놀러 온 가족이 비행기 출발을 몇 시간 앞두고 마트에 들렀다. 원래 해외 여행의 마무리는 친구와 가족들 선물 사는 게 필수다. 이 부부가 승용차 뒷좌석에 각각 여섯 살과 한 살 된 아이들을 남겨 두고 쇼핑을 하던 도중 아이들을 발견한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고 뒤늦게 나타난 부부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괌에 다녀온 사람들 대부분이 몰랐겠지만 미국 일부 주에서는 아이들을 차량에 방치할 경우 아동 학대로 간주한다. 그게 괌이다.

다행히 이 아이들은 일찍 발견돼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현지 뉴스는 “아이들이 땀에 흠뻑 젖은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고 보도했다. 다행히 아동 학대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고 벌금형을 받는 데 그쳤지만 이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당초 이 부부가 “3분 밖에 자리를 뜨지 않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괌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애초에 911 신고가 접수된 게 2시 30분,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한 게 오후 3시 무렵이었고 부부가 나타난 건 3시 15분 무렵이었다. 적어도 45분 이상 아이들을 방치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아이 아버지가 “나는 한국에서 변호사고 아내는 판사”라며 웃으면서 넘기려 했다는 사실이 보도돼 더욱 논란을 부추겼다.

나중에 아이 아버지가 밝힌 당시 상황은 이렇다. 출국 비행기는 오후 5시 10분. 이 부부는 친척들 기념품을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마침 사려고 했던 샴푸가 눈에 띄지 않아 다른 마트로 이동했고 아이들 어머니가 이왕 사러 가는 김에 아이들 색칠놀이를 사다 달라고 했다.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잠든 상태였고 비행기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부부가 각자 흩어져서 하나씩 사오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5분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아이 아버지의 해명에 따르면 마트에 도착한 시간이 2시 45분, 결제를 마친 건 3시 2분이었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뛰어가는 도중에 앰뷸런스와 경찰들이 이들이 타고 온 차를 에워싸고 있는 걸 발견했다는 이야기다.

아이 아버지는 경찰에게 “3분 밖에 안 걸렸다”고 말한 적 없고 웃으면서 “우리는 판사와 변호사라고 말했다는 것도 왜곡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론 보도와 주장이 엇갈리지만 이 부분은 명확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미뤄보면 ‘우리가 법을 잘 아는데 이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이야기했을 가능성은 있다. 다만 첫 번째 마트에서 마지막 결제 시간이 오후 2시 22분이고 문제의 두 번째 마트까지 이동 시간이 10분 이상 걸렸을 걸 감안하면 실제로 아이들이 방치됐던 시간은 최대 30분까지 됐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 아버지의 주장 가운데 믿을 수 있는 대목은 이날 경찰들이 금방 조사가 끝날 거라고 거듭 안심시켰고 이 말을 들은 아이 아버지가 오후 5시 비행기를 다음날 새벽 3시 45분 출발 편으로 변경했다는 사실이다. 누구라도 이 상황이면 적당히 오해가 풀리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분노하고 또 쉽게 잊는다.

그런데 그날 저녁 경찰이 다음날 아침에 판사를 만나야 한다고 통보했다. 절망에 빠진 이 부부는 다시 하루 뒤 새벽 3시 5분 출발 편으로 일정을 변경해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판사를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바로 풀려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건 이날 저녁 갑자기 아동보호국 직원이 찾아 와서 아이들을 격리 조치해야 한다면서 강제로 데려갔다는 사실이다. 말도 통하지 않은 외국인들을 따라 가게 된 아이들은 발버둥치며 울부짖었고 부부도 공포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을 빼앗긴 부부는 강제로 구금됐고 다음날 오후 2시에서야 겨우 판사를 만날 수 있었다. 판사 역시 냉소적이었다. 이걸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들 부부는 이날 저녁 9시가 다 돼서야 ‘기소 전 석방(realese order)’ 조치로 풀려났다. 그때까지도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겨우 모텔을 잡아 하루 저녁을 더 머문 부부는 결국 당초 출발하기로 했던 날짜에서 이틀이 지난 10월 5일 아침 9시 30분이 돼서야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40시간 가까이 부모와 떨어져 있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평생 그 곳에서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겁이 나서 밤새 울었다고 했다. 한국 언론에는 이런 맥락이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어린 아이들을 차에 남겨두고 떠난 건 명백한 잘못이다. 그게 3분이든 30분이든 비난을 피할 수 없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경찰을 불러준 것도 고마운 일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몇 가지 살펴볼 부분이 있다.

일단 이 가족은 판사와 변호사 부부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가혹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아동 학대로 의심할 만한 상황이 아닌 데도 아이들을 강제로 분리 수용하는 게 옳은 조치였는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괌 경찰은 아동학대 혐의에 대해 기소를 취하했고 법원은 아동을 차량에 방치한 부분만 벌금형을 선고했다. 물론 경찰은 매뉴얼에 따라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이었다.

언론 보도도 일부 과장이 있었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경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목격자가 처음 경찰에 신고한 시각이 2시 50분, 경찰은 4분 뒤인 2시 54분에 도착했다. 판사 부부가 도착한 건 3시 15분으로 기재돼 있다. 실제로 아이들이 방치된 시간이 최장 45분까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아이 아버지는 영수증이 찍힌 마지막 결제 시간이 3시 2분이라 주차장에 도착하기까지 13분이나 걸렸을 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대목은 누구나 비슷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절대 아이들을 차에 두고 마트에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잠깐의 실수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강제 구금되고 아이들을 빼앗기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게 단순히 이 부부를 비난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 맥락을 살펴보면 현지 경찰과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한국에 돌아와 보니 이 부부의 ‘머그샷’이 여기저기 떠 있고 온갖 군데에 신상이 공개되고 수백 건의 기사가 쏟아진 상황이었다. 아이들에게도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고 이 가족은 평생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아이 아버지는 나중에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남긴 글에서 “모두 제가 죽기를 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면서 “내가 죽어야 아내의 누명을 벗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흔히 ‘괌 판사 부부 사건’이라고 불렀지만 이건 부모의 직업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건이다. ‘어떻게 저렇게 생각 없이 행동할 수 있지?’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겠지만 실제로 이건 우리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아동의 차량 방치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 조직 노히트스트로크(No Heat Storke)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1998년부터 2021년 9월까지 차량에 방치돼 열사병으로 죽은 14세 미만 어린이가 905명이나 됐다. 1년에 38명 꼴이다. 한국에서도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공개된 것만 10건이 넘는다. 어린이집 통원 차량에서 방치된 어린이가 숨진 사건도 있었고 뇌 손상으로 의식 불명에 빠진 사건도 있었다.

여러 겹의 치즈를 관통하는 구멍.

워싱턴포스트가 2009년 3월, “죽음을 부른 부주의(Fatal Distraction)”라는 기사로 이 문제를 자세하게 다룬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아이를 차에 두고 내리나요?”라고 반문하겠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워싱턴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30년 전에는 이런 사고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운전석 옆 조수석에 어린이를 앉힐 경우 에어백이 터지면서 어린이들이 더 위험해 질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아이들을 뒷좌석에 앉히기 시작했다. 심지어 유아용 시트는 목뼈를 보호하기 위해 뒤쪽을 보게 돌려놓는 경우도 있었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가 놀라웠던 건 문제를 문제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파고 들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데 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보다는 이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정신 나간 부모의 탓으로 돌리고 비난하긴 쉽지만 그게 나와 내 가족의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접근 방식이 달라진다.

어느 날 오후였다. 관공서 직원인 린 밸푸어는 오후 늦게 부재중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 아침에 걸려온 베이비시터의 전화였다.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음성 메모로 넘어갔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두 사람은 원래 낮에도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곤 했기 때문에 전화 달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끊었다. 그런데 곧바로 전화를 걸어 온 베이비시터가 물었다. “브라이스는 어디 있어요?” 당황한 밸푸어가 말했다. “무슨 소리죠?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 순간 머리 속이 하얘지는 느낌과 함께 벨푸어는 창밖을 내다 봤다. 문을 열고 나가 밸푸어가 서 있는 테라스에서 계단까지 20미터 정도, 그리고 11계단, 두 걸음 지나서 12계단을 내려가서 다시 주차장까지 10미터 정도, 밸푸어는 뛰기 시작했다. 마치 그 시간이 30분 정도 걸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차 뒷좌석에서 축 늘어져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창백하고 빛나는 얼굴, 마치 도자기 인형처럼 반질반질 빛나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아, 너무 늦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지나가던 사람이 911에 신고 전화를 걸었는데 당시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구조대원과 통화 너머로 밸푸어가 “오, 맙소사, 안 돼”라고 절규하는 게 들린다.

영국의 심리학자가 제임스 리즌(James Reason)이 소개한 스위스 치즈 모델은 사소한 실수가 모여 어떻게 대형 사고를 만드는가를 설명한 이론이다. 구멍이 난 에멘탈 치즈를 여러 겹으로 쌓았을 때 우연히 모든 구멍이 하나로 만나 관통하는 구멍을 만들게 될 수 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비극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날 아침 밸푸어도 그랬다. 저녁 늦게까지 일하느라 잠이 부족한 상태였고 브라이스는 아침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서 칭얼거렸다. 평소에는 부부가 각각 차를 몰고 다녔는데 마침 한 대를 친척에게 빌려줘서 이날 아침에는 밸푸어가 남편을 태워다 줘야 했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기저귀 가방을 옆자리에 놓아두지 않고 뒷자리에 놓아뒀다고 한다. 밸푸어는 운전 중에 계속 친구와 통화를 했고 고민 상담을 해줘야 했다. 마침 공교롭게도 베이비시터가 며칠 전에 스마트폰을 바꾸는 바람에 새 스마트폰에는 밸푸어의 회사 전화번호가 등록돼 있지 않았고 스마트폰으로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이 시점이 원래는 “지금 곧 도착해요”라고 통화를 했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아이는 뒷좌석에서 쿨쿨 잠이 들어있었다.

만약 이날 아침 남편을 태워다 주지 않았더라면, 아이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왔다고 생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출근길에 누군가를 내려주고 회사로 차를 몰고 간다는 익숙한 패턴이 이날은 남편을 내려주는 것으로 해소되면서 착각을 불러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 내려줬으니 회사로 간다는 도식이 성립한 것이다.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만약 남편이 조수석에 앉느라 기저귀 가방을 뒤로 옮겨놓지 않았더라면 차에서 내리기 전에 옆자리의 기저귀 가방을 발견하고 뒷좌석의 아이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만약 베이비시터가 스마트폰을 바꾸지 않았다면 통화가 됐거나 베이비시터가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왜 오늘은 아이를 데려오지 않느냐는 통화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은 공교롭게도 모든 우연이 안 좋은 방향으로 겹쳤다. 아주 낮은 가능성이지만 그런 가능성은 우리 일상의 이면에 늘 존재한다. 여러 겹의 치즈를 관통하는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고 45도까지 치솟은 뜨거운 차 안에서 아이는 숨졌다.

2급 살인 혐의로 징역 40년형을 구형 받은 밸푸어의 재판에서 경찰 심문 과정에서 녹음된 파일이 공개됐다. “내가 내 아이를 죽였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밸푸어는 울부짖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들을 괴물로 만드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뜨거운 여름, 아이가 차 안에 방치되면 체온이 42도까지 치솟게 된다. 게다가 아이들은 같은 조건에서 어른보다 체온이 세 배 이상 빠른 속도로 상승한다. 실제로 아이들의 사망 원인은 대부분 고열로 인한 장기 손상이다. 몸이 붉다 못해 자주색으로 익고 몸 안의 장기가 자가 분해된다. 머리를 쥐어뜯은 채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안전벨트에 묶여 발버둥치다가 손톱이 다 빠진 채 발견된 아이도 있었다. 주차장에서 사람들이 내가 타고 온 차를 에워싸고 있어서 봤더니, 그 안에 내 아이가 죽어있더라, 이런 끔찍한 상황이 나와 상관 없는 남들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부모들의 직업도 다양했다. 경찰과 회계사, 군인, 목사, 학교 선생님, 대학 교수, 소아과 의사, 로켓 과학자도 있었다. 9시간 동안 방치된 아이, 뒷좌석에 아이가 죽어있는 줄도 모르고 죽은 아이를 태우고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온 아빠도 있었다. “스칼렛은 어디 있나요?” “앗, 오늘 안 왔는데요?” 그 말을 들은 아이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한 아이 엄마는 주차장에서 도난 경보기가 세 차례나 울리는 걸 창밖으로 내다봤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원격으로 알람을 해제한 뒤 다시 일을 했다고 한다. 이 엄마는 평생을 죄책감과 공포, 자기 혐오에 시달릴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의식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뭔가를 생각하면 그 뭔가가 경쟁적인 기억 시스템의 우선 순위를 차지하게 된다. 아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아이 생각만 하는 부모는 없고 8시간 동안 아이를 잊는 부모는 없지만 2분 동안 완전히 다른 일에 몰두하느라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는 의외로 흔하다는 이야기다.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괌에서의 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들 부부를 쇼핑하느라 아이들을 방치한 생각 없는 부모들이라고 생각했다. 통학 차량에 방치됐다가 숨졌다는 아이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는 문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들이 나쁜 엄마라서가 아니고 생각 없이 바쁜 아빠라서가 아니다. 실수와 우연이 겹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분노하거나 비난하고 애도하면서 이런 사건을 흘려 보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비극은 반복된다.

판사 부부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잠깐은 괜찮겠지 했을 것이다. 누군가가 신고를 하고 40시간 가까이 아이들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한 심리학자 에드 히클링(Ed Hickling)은 “우리는 우리의 세상이 이해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다고 믿으려는 욕구가 있다”고 말한다. 원칙을 지키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믿음.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그들이 뭔가 원칙을 어겼을 것이라 믿고 비난하게 된다.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고 믿고 싶은 것이죠. 그래서 그들을 괴물로 만드는 것입니다.”

비극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일단은 이 기사를 읽는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이 읽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을 괴물로 내몰지 않고 일상에 도사린 위험을 바로 보는 것이다. 이런 결론이 단순히 아이를 뒷좌석에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교훈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워싱턴포스트가 소개하는 해법은 다음과 같다. 스마트폰이나 핸드백, 사무실 출입증 등을 아이 옆에 두는 것도 좋다. 스마트폰을 집어들려면 아이를 확인해야 한다. 아이를 차에 두고 갈 수는 있지만 스마트폰을 두고 가는 경우는 많지 않고 10분 만에 스마트폰을 찾으러 다시 돌아올 것이다. 카시트를 뒷좌석에 설치하려면 카시트에 커다란 곰 인형을 앉혀 두는 방법도 추천한다. 아이를 카시트에 앉히려면 곰 인형을 조수석으로 옮겨야 한다. 곰 인형이 옆자리에 앉아 있으면 아이가 뒤에 앉아있다는 의미다. 어린이집이나 베이비시터와 시간 약속을 하는 것도 좋다. “9시 반까지 내가 애를 데려오지 않으면 저에게 꼭 전화를 해주세요.”

기사를 쓴 진 바인가르텐(Gene Weingarten) 기자는 취재 후기에서 20여 년 전 마이애미헤럴드 기자로 있던 시절, 어느 날 아침을 떠올렸다. 회사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 댈 곳을 찾고 있는데 뒷좌석에서 딸이 말을 걸었다. 세 살이었다. 그 순간까지 그는 아이가 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만약 문을 닫고 내렸으면 아이는 마이애미의 뜨거운 햇볕 아래 30분도 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기자는 뒷좌석의 딸과 눈이 마주친 순간, 울컥하고 메스꺼움이 올라왔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고 썼다. 다행히 이들은 평범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이 이야기를 딸과 아내에게 끝내 하지 못했다고 한다. 바인가르텐이 쓴 기사는 그런 메스꺼움을 독자들에게 안겨준다. 그리고 비로소 해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키즈앤카스(Kids and Cars, 아이와 자동차)라는 비영리 조직을 운영하는 자넷 페널(Janette Fennell)은 모든 승용차에 뒷좌석 센서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들기 위해 로비를 하고 있다. 시동을 끈 뒤에도 뒷좌석에 누군가 앉아있으면 경고음을 내도록 하는 센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직원이 아들을 잃은 뒤 관련 기술로 특허를 받았는데, 이걸 상업용으로 만들겠다는 업체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두 가지 이유인데 첫째, 만약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소송을 당할 위험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고 둘째, 심리적인 이유로 이런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아이를 뒷좌석에 두고 내릴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뒷좌석 센서는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고 비용도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뒷좌석 시트 무게를 확인하는 방법도 있고 차가 출발하기 전에 뒷문이 열린 적이 있다면 내릴 때 뒷좌석을 확인하도록 알람을 울리게 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닛산과 GM 등이 이런 시스템을 일부 도입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2018년 교육부가 전국 유치원과 초등학교, 특수학교 등 통학 버스 1만5200대에 ‘잠자는 아이 확인 장치’나 ‘동작 감지 센서’를 설치하기로 했다. ‘잠자는 아이 확인 장치’는 운전자가 맨 뒷 자석의 버튼을 눌러야 시동을 끄고 문을 닫을 수 있다. ‘동작 감지 센서’는 시동이 꺼진 차 안에서 움직임이 감지될 경우 경고음을 울리게 돼있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문제를 전시하고 비극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만들 수 없다. 우리 주변의 많은 문제는 불가항력이거나 갑자기 삶에 끼어 든 불운으로 시작된다. 워싱턴포스트 기사의 부제는 “Forgetting a Child in the Backseat of a Car Is a Horrifying Mistake. Is It a Crime?(차 뒷좌석에 아이를 두고 잊어버리는 건 끔찍한 실수다. 이것은 범죄인가?)”다. 비난을 거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해보는 것, 이게 워싱턴포스트가 제안하는 해법이다.

(이정환의 ‘문제 해결 저널리즘’에 실린 원고 가운데 일부입니다.)

문제의 정의와 접근,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보자.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에서는 “해법의 작은 조각을 찾으라”고 조언한다(As reporters we are often looking for the very, very perfect solution. But when it comes to really big problems you are often more likely to find small slices of a solution.). “여러분, 이것만 하면 됩니다, 제가 세상을 구원할 해법을 찾았어요.” 세상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면 좋겠지만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복잡하고 구조적이다. 하나의 문제를 풀면 다른 문제가 터져나오고 여러 문제가 꼬여 있거나 기회비용을 수반한다. 그래서 일단 작은 아이디어부터 시작해 보자는 게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조언이다.

한 장짜리 체크리스트가 사람을 살린다.

2007년 12월 뉴요커에 실린 “목숨을 살리는 체크리스트”라는 제목의 기사는 해법에 접근하는 과정에 대한 몇 가지 힌트를 준다. 2차 세계 대전 때 ‘하늘을 나는 요새(flying fotress)’라고 불렸던 폭격기 B-17이 시험 비행에서 추락해 큰 충격을 안겨준 적 있다. 1935년 10월 30일, 미국 오하이오주 공군 비행장에서 군용 항공기를 구입하기 위한 시험 비행을 하는 도중이었다. 활주로를 뜨자 마자 100미터 상공에서 한쪽 날개가 꺾이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추락했다. 조종사를 비롯해 승무원 5명 가운데 2명이 현장에서 숨졌다.

보잉의 B-17은 성능과 디자인에서 경쟁사들을 크게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이미 공군의 대량 구매도 예정된 상태였다. 두 배나 많은 폭탄을 싣고 두 배나 더 멀리 날 수 있었지만 새로운 기능이 너무 많아 조종사들이 이를 모두 외운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였다. 조종사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기능이 너무 많다(“too much airplane for one man to fly.”)는 평가도 있었다. 결국 미국 공군은 보잉 대신에 마이클더글라스의 폭격기를 선택했다.

반전은 그 다음부터다. 자칫 보잉을 파산으로 몰고 갈 뻔 했던 B-17은 간단한 아이디어로 살아났다. 조종사의 숙련도 부족을 문제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면 훈련을 더 많이 시켜야 한다는 결론으로 갔겠지만 공군 조종사는 최고의 베테랑들이다. 문제는 더 많은 훈련이 아니라 어떻게 실수를 최소화할 것인가였다. 시험 비행 사고 역시 기계 결함이 아니라 조종사가 브레이크를 실수로 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공군은 테스트 용도로 구입한 B-17을 점검하면서 조종사와 부조종사가 확인해야 할 한 장짜리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기어 스위치는 중립으로, 연료 전송 장치는 잠겨 있어야 하고, 연료 차단 스위치는 오픈돼 있어야 한다, 오토 파일럿 기능은 꺼져 있어야 한다, 제너레이터가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자이로가 셋팅됐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등등이다.
이 체크리스트 덕분에 B-17은 180만 마일 비행에 성공했고 보잉은 1만 3000대의 주문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기사를 쓴 사람은 외과의사 아툴 가완디다. 가완디는 “복잡한 일을 많이 처리해야 하는 현대인이 실수와 실패를 피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체크리스트”라고 강조한다.

가완디에 따르면 미국에서 수술 도중 죽는 사람이 15만 명인데 이 숫자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의 3배 규모다. 가완디는 병원에 제대로 된 체크리스트만 있어도 의료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제안한다. 실제로 피터 프로보노스트가 제안한 체크리스트를 도입한 병원들은 환자 사망률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 가완디는 “현대 의학도 B-17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4만 명 이상의 외상 환자들을 조사한 한 연구에서는 1224가지 증상을 포함한 3만 2261건의 조합이 있었다. 가완디의 표현에 따르면 3만 2261대의 완전히 다른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것과 같은 모험을 일상적으로 치러야 한다.

뉴요커의 기사가 2007년 기사라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란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에, 그리고 기자가 아닌 의사가 솔루션 저널리즘의 모델 같은 기사를 쓴 것이다. 단순히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문제에서 해법의 아이디어를 얻고 작은 변화를 끌어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아이디어는 지나치게 단순해서 오히려 설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가완디에 따르면 의사들은 체크리스트가 필요하다는 프로보노스트의 제안을 불쾌하게 생각했다. 한 의사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서류 나부랭이는 치우고 환자나 치료하죠.”
프로보노스트가 시나이그레이스병원 경영진을 처음 만났을 때 체크리스트를 도입하라고 요청하는 대신 카테터 감염 비율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확인해 봤더니 전국 평균을 웃도는 수치였다. 그때서야 이 병원도 ‘키스톤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그룹에 참여하기로 했다. 병원마다 프로젝트 매니저를 두고 한 달에 두 번씩 전화회의를 하는 모임이었다. 병원 경영진은 처음에는 투덜거렸지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많은 병원에서 경영진과 의사들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경영진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걸 좋아하는 의사는 없다. 그런데 클로르헥시딘이 비치된 집중치료실이 3분의 1도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클로르헥시딘 구입 예산을 늘리고 새로운 의료 장비를 개발하는 등 변화가 시작됐다. 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 따르면 미시간주에서 ‘키스톤 이니셔티브’ 프로젝트에 참여한 병원들은 18개월 만에 1억 7500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고 1500명 이상의 환자들의 목숨을 살린 것으로 평가했다.

갈색 초콜릿은 콘서트를 중단하라는 신호다.

가완디는 한국에도 번역 출간된 ‘체크! 체크리스트’라는 책에서 로큰롤 그룹 밴 헤일런(Van Halen)의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벤 헤일런은 공연 기획사와 계약을 맺을 때 복잡한 조건을 요구하기로 유명했는데 이를테면 계약서 126번에 무대 뒤에 반드시 M&M 초콜릿 바구니를 두되 그리고 거기에 갈색 초콜릿이 섞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까다로운 조항을 넣는 게 대표적이었다. 만약 갈색 초콜릿이 하나라도 담겨 있을 경우 콘서트를 취소한다는 조건이었다. 실제로 콜로라도에서는 갈색 초콜릿을 문제 삼아 콘서트를 취소한 적도 있었다.
나중에 리드 싱어 데이빗 리 로스(David Lee Roth)가 밝힌 바에 따르면 이 갈색 초콜릿은 실제로 공연 기획사가 전체 체크리스트를 얼마나 꼼꼼하게 실행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지표였다. 만약 초콜릿이 준비돼 있지 않거나 초콜릿은 있는데 갈색 초콜릿이 섞여 있다면 전체적으로 준비가 소홀했다고 볼 수 있다. 계약서의 모든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갈색 초콜릿만 봐도 준비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우리가 공연할 때는 콘서트 장비를 가득 실은 대형 트레일러 9대가 이동했다. 그런데 기술적 실수가 너무 잦았다. 무대 바닥이 움푹 꺼지거나 대들보가 천장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거나 문이 작아서 콘서트 장비가 빠져나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우리의 계약서는 중국의 전화번호부처럼 두툼했다. 만약 갈색 초콜릿이 발견됐다면 우리 계약서의 모든 조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신호고 어디에선가 실수가 발생할 거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가완디는 “복잡한 상황을 헤쳐나가고 위기를 극복하려면 반드시 체크리스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판단해야 할 여지는 항상 남겨둬야 하지만 그 판단은 체크리스트를 통한 절차의 도움으로 향상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좋은 체크리스트와 나쁜 체크리스트가 있다.

가완디가 소개한 파키스탄의 비누 실험도 흥미로운 벤치마크 모델이 될 수 있다. 미국질병대책센터에서 일하던 스티븐 루비라는 의사가 파키스탄 지부에 발령이 나면서 슬럼가에 비누를 공급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간단하고 뻔한 아이디어였지만 프록터앤갬블을 찾아가 비누를 무상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 무렵 이 회사가 한창 밀고 있었던 트리클로카반이 들어간 비누와 들어가 있지 않은 비누 두 종류의 샘플을 받아 두 그룹에 나눠주고 손을 잘 씻는 방법을 알려줬다.

실험 대상이 된 가족들은 1년 동안 1주일에 평균 3.3개의 비누를 받았는데 1년이 지난 뒤 확인해 보니 비누 종류에 상관 없이 결핵 발병 비율이 48%나 떨어졌다. 설사는 52%나 줄었고 농가진도 35% 줄었다. 소득 수준이나 인구 밀집 정도, 심지어 어떤 물을 마시느냐와 별개로 손을 씻는 것만으로도 전염병 발병 비율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프록터앤갬블은 신제품 비누의 효능을 입증하고 싶었겠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단순히 비누가 아니라 비누가 생활 습관을 바꿨다는 것이다. 가완디의 분석에 따르면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 비누를 정기적으로 공급 받으니 비누를 아낄 필요가 없었다. 실험 이전에 비누를 쓰지 않았던 게 아니다. 다만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고 비누를 아낌 없이 쓰라는 조언을 들으니 손을 더 자주 씻게 됐다. 둘째, 손을 씻는 방법이 달라졌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원래 손을 잘 씻는 사람들이었다.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서 손을 씻는다는 비율이 80%가 넘었다. 문제는 손을 빨리 씻고 용변에 관계된 손만 씻었다는 것이다. 비누 실험을 1년 동안 진행하면서 두 손을 완전히 물에 담그고 비누 거품을 풍성하게 낸 뒤에 씻어내라는 원칙을 따르게 됐다. 과거에는 용변을 본 뒤에만 씼었지만 이제는 음식을 준비하거나 아이들에게 음식을 먹일 때도 손을 씻게 됐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이렇게 아름답게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파키스탄의 비누 실험은 비누를 무상 공급하겠다는 비누 회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야말로 한시적으로 진행된 실험이었을 뿐이다.
보잉의 다니앨 부어맨에 따르면 체크리스트에는 좋은 체크리스트와 나쁜 체크리스트가 있다. 나쁜 체크리스트는 너무 길고 읽어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거나 당장 뭘 하라는 건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무 직원들이 만들고 정작 현장에서는 외면하게 되기 마련이다. 좋은 체크리스트는 간단 명료하고 효율적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단계를 일깨워준다.

가완디가 소개한 호놀루루에서 출발한 유나이티드항공 비행기의 블랙박스 녹음 파일 내용은 체크리스트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다. 비행기 파편이 날아다니고 소음도 엄청났다. 세 번째 엔진이 멈췄고 네 번째 엔진은 불이 붙었다. 날개 플랩의 바깥쪽 부분이 부서졌다. 폭탄에 맞은 것일까.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날까. 조종사들은 최대한 빨리 판단을 내려야 했다. 바다에 불시착시킬 것인지, 호놀룰루 공항으로 돌아갈 것인지 등등. 이들은 놀랍게도 체크리스트를 꺼내 들었다.

기장 : “내가 체크리스트를 읽을까요.”
기관사 : “내가 꺼냈습니다. 준비되면 말씀하세요.”
기장 : “준비됐습니다.”

이들은 체크리스트에 따라 고도를 낮추고 파손된 엔진을 정지시키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연료를 버리고 호놀룰루 공항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했다. 이 체크리스트에는 명확한 정지 지점이 명시돼 있고 체크리스트를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해야 할 변수가 지정돼 있었다.

놀랍도록 간단하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해법.

“노숙인들에게 집을 줬더니 노숙인들이 사라지더라.” 이건 당연하면서도 정말 황당무계한 소리처럼 들린다. “노숙인들에게 집을 주지 않고는 노숙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것 역시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집 없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얼마나 많은데 노숙인들에게 집을 나눠주면 그 돈은 누가 대나? 하지만 노숙인 문제를 들여다 보면 볼수록 이것 외에 다른 해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임상 심리학자 샘 쳄베리스(Sam Tsemberis)가 제안한 ‘하우징 퍼스트(housing first)’ 전략은 노숙인들에게 일단 집을 나눠 주자는 것이다. 과거에는 약물과 알코올을 끊는 걸 조건으로 집을 주겠다고 설득했지만 쳄베리스의 제안은 일단 길거리에 살지 않도록 지붕이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서 사회 복귀를 돕자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쳄베리스는 노숙인 문제를 연구한 적은 없었지만 임상 심리학자로서 전문가들이 노숙인들을 대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노숙인들은 게으르고 윤리의식이 낮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노숙 생활은 노동 집약적이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의지가 약해서 약물을 끊을 수 없는 게 아니라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환경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쳄베리스는 이들을 일단 거리에서 구출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보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쳄베리스가 밝힌 에피소드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렇게 묻곤 했다고 한다.

“이건 미친 짓이에요. 만약 약물 중독자가 집에 있는 가구를 다 내다 팔아도 내쫓지 않는다는 말이죠?”

쳄베리스는 대답했다.

“네. 내쫓지 않습니다. 집을 주고 거기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도 있었다.

“꼭 예쁜 집이 필요한가요? 아무 집이나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쳄베리스가 대충 지은 집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유타주에서 쳄베리스의 제안을 받아들인 결과 노숙인 비율이 91% 가까이 줄어들었는데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소개하면서 “만성적인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한 놀랍도록 간단한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유타주는 미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다. 2005년까지만 해도 1932명의 만성 노숙자가 있었는데 2014년에는 539명으로 줄어들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놀라운 변화를 만드는 데 필요했던 건 복잡한 이론이나 예측 모델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이었다”면서 “제 정신이라면 아무런 조건 없이 노숙인들에게 집을 나눠주자는 생각에 누가 동의를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쳄베리스의 ‘하우징 퍼스트’ 전략은 다음과 같다. 먼저 만성적인 노숙인들을 분류해야 한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고 1년 이상, 또는 지난 3년 동안 4차례 이상 노숙 생활을 한 경우다. 이들은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거의 없고, 가장 많은 공공 자원을 쓰는 사람들이다. 병원에 더 자주 가고 감옥에 더 자주 간다. 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연간 평균 2만 달러에 이른다노숙인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의 교훈은 노숙인들에게 잠잘 곳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는 근본적으로 현실을 뒤집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돈으로 차라리 집을 지어서 나눠주면 장기적으로 비용도 적게 들고 노숙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쳄베리스의 이론이었다.

실제로 솔트레이크시티에서 2004년에 ‘하우징 퍼스트’ 전략을 실험하면서 17명의 노숙인들에게 집을 줬는데 1년 뒤에 보니 14명이 그대로 그 집에 살고 있었다. 믿기 어렵지만 오히려 관리 비용이 줄어들면서 예산도 절약하게 됐다. 연방 정부가 11개 도시에서 734명에게 테스트했더니 약물 중독 수준이 크게 낮아졌고 건강 관련 비용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길에서 먹고 자는 노숙인들도 병원에 오면 치료를 해야 하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정부가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보였던 노숙인들에게 지붕이 있는 집이 생기면 놀랍게도 마약과 알코올을 끊게 된다. 사례로 입증된 결과다.

워싱턴포스트가 소개한 데이빗 클락이라는 노숙인의 사례도 흥미롭다. 데이빗은 릿츠칼튼과 힐튼호텔 등에서 요리사로 일하다가 알코올 중독으로 해고된 뒤 노숙 생활을 하게 됐다. 한때 눈을 뜨자마자 술을 먹고 저녁에는 잠들기 위해 술을 먹었다고 할 정도로 알코올 의존도가 높았던 그는 새 집으로 이사하고 난 뒤 감쪽같이 술에 대한 유혹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금은 건강 보조원 자격증을 취득했고 일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다. 파트 타임이지만 내셔널스파크에서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다.

약물 중독과 정신분열증을 겪고 있는 제롬 잭슨은 노숙 생활을 20년 넘게 했다. 어느날 지원 주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과연 그런 게 가능한지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금방 자리가 날 거라고 하더라고요. 걱정하지 말라고요.”

잭슨은 중독자라서 자격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 말이 맞았어요. 3개월 뒤에 집이 생겼고 노숙 생활이 끝났죠.”

노숙인 지원 센터인 젤라니하우스에서 일하는 모니카 스탭토는 어느 날 자동차에서 살고 있는 젊은 임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젤라니하우스에는 빈 방이 10개나 있었는데 당장 이 임신부를 데려올 수는 없었다. 시청 담당자가 이 여성이 진짜 노숙자인지 확인하고 등록하기까지 3주가 걸렸다. 스탭토의 이야기다. “이런 사람들은 제때 데려오지 못하면 떠나버릴 수도 있어요. 연락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되겠죠.”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

물론 솔루션 저널리즘이 언제나 ‘섹시한’ 해법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지난 2016년 80여 개 언론사들이 모여서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SF Homeless Project)라는 이름으로 공동 취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샌프란시스코는 2017년 기준으로 노숙인이 7000명으로, 인구 대비 노숙인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 가운데 하나다. 지역 언론들이 모여서 뭔가 답을 찾아보자고 나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을 비롯한 지역 언론사들이 평범한 시민이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추적했고, 여러 정책 과제들을 직접 실험하고 검증하면서 대안을 파고 들었다. 9개월 동안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 홈리스 보호소 건립이 앞당겨졌고, 기업 후원도 늘어났다. 노숙인 바우처 제도도 정착됐다. 길거리를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막연하지만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것이다. 일련의 프로젝트 성과로 지난해 노숙인 지원 법안이 통과됐고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기업들에게 추가 세금을 부과하고 노숙인 약물 치료와 보호소 확충, 재활 지원 사업 등이 진행되고 있다.

변화는 느리고 더디지만 원래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는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샌디에이고로 확산돼 ‘샌디에이고 홈리스 어웨어니스’로 이어졌다. 과정에 주목하는 언론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성공 사례에 그치지 않고 시스템을 바꾸는 실험이 지역을 넘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개별 사건을 넘어 문제의 구조를 보고 질문과 토론을 제안하고 실험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인 시설은 노숙인 쉼터와 이보다 좀 더 조건이 좋은 내비게이션 센터, 그리고 영구 지원 주택으로 나뉜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에는 호텔을 임대해서 노숙인들을 수용하기도 했다. 팬데믹이 진정되면 호텔을 비워주고 2000여 명을 다시 거리로 내보내거나 이들에게 새로운 집을 마련해줘야 하는 상황이다.

나단 케인(Nathan Caine)의 가족은 노숙인 쉼터에서 1년을 지낸 뒤에야 겨우 지원 주택을 분양 받을 수 있었다. 이 부부에게는 5개월 된 딸이 있는데 영구 지원 주택은 초등학생 이상의 자녀가 있는 가족이 대상이기 때문에 지원 자격이 안 됐다. 샌프란시스코에는 8000여 개의 영구 지원 주택이 있지만 이런 이유로 766개의 주택이 아직 비어있는 상태다.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거리에 누워 있는데 정작 집은 비어있고 누군가가 여기에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새너제이에 살고 있는 호앙 응웬(Hoang Nguyen)은 일자리를 잃고 정부 지원금 148달러로 생활하다가 월세를 못 내서 쫓겨난 경우다. 18개월 동안 노숙인 쉼터에 있다가 2020년 11월 80평방피트의 ‘타이니 홈(tiny home)’으로 옮겨왔다. 대략 2.3평 정도 크기다. 겨우 몸을 눕힐 정도의 공간이지만 문을 닫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프라이버시와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전기와 와이파이, 냉방과 난방 설비도 지원된다.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달라진다.

노숙인 지원 단체의 활동가들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어 있는 호텔을 지원 주택으로 개조하거나 지원 주택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장 지원 주택을 늘리지 못한다면 이런 ‘타이니 홈’이 과도기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건설 비용이 1만 5000~1만 8000달러 정도인데 대부분 민간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타이니 홈’은 쉼터나 내비게이션 센터, 지원 주택의 중간 단계에 있다. 쉼터를 거부하고 길거리를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한 안전 장치 같은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차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도 넓은 의미의 노숙인으로 분류되지만 이들은 다행히 일상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노숙인들은 집을 잃으면 일단 차에서 먹고 자면서 생활하다가 차를 잃게 되면 텐트촌으로 옮겨오거나 아예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다가 약물에 빠져들고 장기 노숙으로 가게 된다. 단계적으로 더 열악한 상황에 빠져들지만 개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법에 접근하기 위한 길고 복잡한 질문들.

홈리스 100명에게 물어보면 100명이 모두 다른 답변을 한다. 그만큼 다들 복잡하게 불행하고 해결도 복잡하다. 다음은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이 독자들에게 700개 이상의 질문을 받아 정리한 것이다.

1. 홈리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있습니까?
=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 새너제이와 오클랜드 등 베이 에어리어(Bay Area)의 공무원들이 모여 주거와 주택 계획 등을 협의하고 있지만 이를 조정하는 정부 기관은 없습니다.

2. 어떤 사람들이 노숙을 하나요?
= 2019년 1월에 연방 정부 집계에 따르면 베이 에어리어 9개 카운티에 3만 5000명 이상의 노숙인이 있는데 이 가운데 3만 명(86%) 정도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숙인 보호시설이 아니라 길거리나 자동차 안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죠. 어떤 집계에서는 15만 명이 넘기도 하죠. 전문가들은 실제 노숙인은 정부 집계의 두 배 이상일 거라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3. 팬데믹 동안 노숙인들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기 위해 보호시설 수용 인원을 줄이고 취약 계층이나 감염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임시로 호텔을 임대했습니다.

4. 팬데믹이 끝나면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가나요?
= 여러 가지 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소 2개 이상의 호텔을 비롯해 부동산을 일부 구매하거나 임대하는 걸 포함해서요. 샌프란시스코에는 수백 채의 빈 아파트가 있죠. 이 가운데 일부를 기부 받거나 임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건물주나 주변 주민들의 반발을 설득하는 게 과제입니다.

5. 팬데믹 동안 노숙인이 더 늘지 않았나요?
= 이 유명한 자비로운 도시가 노숙인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죠. 노숙인 지원이 늘면서 다른 지역 노숙인들까지 옮겨오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것이죠.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노숙인 가운데 70% 정도가 노숙인이 되기 전부터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도시들은 이 비율이 80% 정도 됩니다. 지난해 4월부터 외부 유입이 좀 늘어났다는 관측도 있었지만 확실한 데이터는 없습니다. 일부는 이곳으로 이주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씨와 자유로운 환경을 좋아하기 때문에 베이 지역으로 오죠. 샌프란시스코 뿐만 아니라 미국의 거의 모든 살기 좋은 도시들이 노숙자들을 끌어들이는 자석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샌프란스시코만의 문제는 아니죠.

6. 노숙인들을 치료 시설이나 보호 시설로 강제로 보낼 수 있습니까?
= 연방법이나 주법이나 약물 남용이나 정신 질환에 대한 치료를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뉴욕에서는 몇 년 전 노숙인들에게 감옥이나 보호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법이 통과됐는데 베이 지역에서는 이런 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거의 없죠.

7. 팬데믹 기간에 노숙인 캠프가 얼마나 늘었습니까?
= 도시 전체에서 텐트 캠프가 70% 이상 늘었습니다. 특히 텐더로인(Tenderloin) 지역에서는 2020년 1월과 5월 사이에 285%나 늘어났습니다.

8. 캘리포니아주에 특별히 노숙인이 많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캘리포니아주에만 13만 명이나 됩니다.
= 일단 캘리포니아주가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죠. 캘리포니아주에는 미국 인구의 12%가 거주하지만 미국 노숙인의 약 25%가 있습니다. 주거 비용과 부족이 1순위고요. 원래 집이 부족하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집을 구하기가 더 어렵게 되죠.

9. 노숙인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이유가 뭔가요?
=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임금이 저소득층의 주택 가격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고, 둘째, 펜타닐이나 메스암페타민 같은 약물 남용이 늘고 있습니다. 자동차에 사는 사람들(아마 한때 안정적인 주택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게 가장 큰 요인이고요.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그램으로 2018년에 2000명 이상의 노숙인들을 구출했지만 한 명을 구출할 때마다 세 명이 늘었죠.

10. 얼마나 많은 노숙인들이 마약을 하고 있습니까? 정신 질환 비율은 어느 정도 되나요?
= 대략 42%가 약물이나 알코올 남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39%는 정신질환을 겪고 있고요.

11. 퇴역 군인들도 많은가요?
= 노숙인의 8%가 퇴역 군인들로 추산됩니다. 2017년보다 11% 줄어든 비율입니다.

12. 노숙인들이 다른 도시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나요?
= 보통은 가장 친숙한 커뮤니티에 머뭅니다. 하지만 일부는 더 많은 지원을 받을 것으로 생각되는 도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2019년 조사에서 노숙인의 55%가 샌프란시스코에서 10년 이상 살았다고 답변했습니다. 1년 미만이라고 답변한 사람은 6%밖에 안 됐습니다.

13. 노숙인이 계속 더 늘어날 것 같은데요. 다른 지역의 노숙인들이 베이 에어리어로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까?
= 50세 이상의 노숙자 가운데 44%가 50세 이후에 노숙인이 됐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1990년에는 노숙인 가운데 50세 이상이 11% 밖에 안 됐죠. 문제는 저축이 없는 나이 든 저소득 미국인들이 육체적으로 일할 수 없게 되면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4. 노숙인들 중에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요?
= 2019년 조사에서는 11% 정도가 풀타임 또는 파트타임으로 고용돼 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25% 정도입니다.

15. 노스 베이(North Bay, 샌프란시스코 북부 지역)에 노숙인이 적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도심을 좋아합니다. 노숙인들이 많은 곳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고요.

16. 노숙을 오래한 사람들은 이 상황을 개선할 의지가 없나요? 거리에서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 길거리에서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이 상황이 해결되기를 바라죠.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밖에서 잘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고 연방 법원 판결은 그 권리를 지지합니다.

17. 노숙인 한 명이 주택 지원을 받으면 다른 한 사람이 쫓겨나게 되나요?
= 누군가가 새로 입주한다고 해서 다른 입주자를 내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노숙인이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죠. 쉼터나 지원 주택 등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18. 노숙인들이 집을 얻게 되면 언젠가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게 되나요? 아니면 계속 이들을 지원해야 하나요?
=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만성적인 노숙인들, 전체 노숙인의 38%는 집중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집을 얻어도 일자리를 찾거나 스스로를 부양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나머지 62%는 집이 있으면 자급자족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될 사실은 노숙인이 거리에서 노숙을 하면 치안과 의료 등의 비용으로 연간 약 8만 5000달러가 들어간다는 겁니다. 만약 이들에게 집을 제공하면 2만 5000달러로 줄어들게 됩니다.

19. 엠바카데로에 새로운 내비게이션 센터가 완성되면 누가 들어가게 되나요?
= 가장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노숙인들을 수용합니다. 10년 이상 노숙을 한 사람들이 대상이고요. 엠바카데로 노숙인 가운데 절반 정도가 내비게이션 센터에 들어갑니다. 일단은 그 인근의 노숙인들을 우선 수용할 것입니다.

20. 노인과 장애인들이 걱정인데요. 이들이 더 급한 것 아닌가요?
= 장애가 있고 만성 질환이 있는 노숙자에게 더 높은 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용 시설이 부족합니다. 노숙자의 27%가 신체 장애가 있습니다. 31%는 만성 질환을 겪고 있고요.

21. 내비게이션 센터는 약물 중독이나 정신질환 등의 문제를 제대로 지원할 수 있나요?
= 내비게이션 센터는 1박에 100달러 정도로 노숙인 쉼터 보다 비용이 두 배 가까이 더 들어갑니다. 가장 문제가 많은 사람들을 지원하는 곳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했지만 다른 지역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로 성과가 좋습니다.

22. 내비게이션 센터에 반대하는 여론도 많은데요.
= 내비게이션 센터는 주거지역에서 떨어진 곳에 들어서게 됩니다. 반대 여론이 많지만 일단 내비게이션 센터가 생기고 길거리에 노숙인이 줄어들면 반대 의견이 크게 줄어듭니다. 엠바카데로의 경우 새 센터를 막아달라는 주민들의 소송에도 불구하고 시 지도자들이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23. 노숙인 쉼터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노숙인들도 많죠?
= 노숙인의 30% 정도가 정부 지원이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상담을 해보면 소지품을 도난당하거나 일부 소지품을 두고 가야 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차라리 길거리가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들을 설득하는 데 최대 2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내비게이션 센터는 좀 더 개방적이라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합니다. 그래서 내비게이션 센터를 계속 늘려나가는 추세입니다.

24. 길거리의 대변은 어떻게 할 건가요?
= 날마다 청소하고 있지만 너무 많은 쓰레기가 쏟아지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25. 밀집 거주 지역을 따로 만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많은 전문가들이 독립형 또는 적층형 모듈식 소형 주택이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지역 사회의 동의를 얻고 적당한 위치를 선정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최근에 산타 로사에 퇴역 군인들을 위한 작은 독립형 주택 12채가 문을 열었습니다. 새너제이에도 비슷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최대한 주거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야 하죠. 환영하는 지역도 있습니다만 적절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26. 집을 잃고 쫓겨난 경우, 노숙인이 되지 않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있습니까?
= 퇴거를 막기 위해 싸우는 데 도움이 되는 많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상담 프로그램도 많고요. 주택 바우처와 주택 지원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27. 쉼터에 침대가 충분한가요?
= 그렇지 않습니다. 최소 1000명 이상의 대기자 명단이 있습니다. 2020년까지 1000개의 대피소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286개에 그쳤죠.

28. 샌마테오(San Mateo) 카운티의 세라몬테(Serramonte) 지역에 빈 건물들이 많던데요. 이런 건물을 노숙인 시설로 개조할 수는 없나요?
= 좋은 아이디어입니다만 구역 변경이나 정부 승인, 자금 확보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동네도 다른 동네의 노숙인을 받고 싶어하지 않죠. 하지만 지역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다들 동의하고 있습니다.

29. 노숙인 거주 지역에는 왜 그렇게 쓰레기가 많나요?
=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소중하게 여깁니다. 노숙인들은 갖고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에 소유물에 집착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쓰레기처럼 보일 수 있는 물건을 들고 다니는 건 정신 질환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30. 텐트 캠프는 위험하고 위생 문제도 많습니다. 이걸 왜 방치하나요?
= 텐트 캠프를 계속 단속하고 있습니다. 많이 줄어들었고요.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벗어나 건강한 환경으로 옮겨 가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충분한 자원이 없습니다. 노숙인들은 더 나은 대안이 없다면 옮겨 가려고 하지 않고요. 항상 논란의 여지가 있는 지속적인 균형 조정 작업입니다.

31. 노숙인들은 왜 발렌시아 스트리트나 마켓 스트리트 같은 교통량이 많은 곳에서 드러눕거나 자고 있나요?
= 군중과 가까이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요.

32. 노숙인 시설을 꺼리는 노숙인들은 왜 그런 건가요? 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 1년 이상 노숙을 했거나 최근 3년 동안 네 차례 이상 노숙을 했던 사람들을 만성적인 노숙인으로 분류합니다. 약물 남용이나 정신 질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혼란과 두려움 등으로 소통이 어렵습니다. 노숙인 시설로 옮기자고 설득하기까지 2년씩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33. 관리 가능하면서도 질서 정연한 텐트 캠프를 만들 수는 없나요?
= 자동차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 프로젝트 주차장을 만들 계획입니다. 새너제이에 이미 하나가 있죠. 오클랜드에는 1년 이상 임시 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시 쉼터는 관리가 어렵습니다. 텐트가 아니라 고정된 주택이 필요합니다.

34. 바지선 위에 아파트를 짓고 바다 위에 띄워두는 건 어떨까요?
= 외딴 섬에 가둬두는 건 그들을 죄수나 포로처럼 생각하게 만들겠죠. 퇴역한 해군 선박 같은 걸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다루기도 힘들죠. 위험하고요.

35. 임대 주택을 짓는데 70만 달러나 드는 이유가 뭔가요?
= 샌프란시스코는 원래 건설 비용이 많이 드는 지역입니다. 규제도 까다롭고요. 모듈식 주택 건설에 반대하는 건설 업계 저항도 있습니다.

36. 고가도로 아래에 많은 공간이 있습니다. 이 공간을 노숙인 커뮤니티로 개발할 수 있나요?
= 실제로 브라이언트 스트리트에는 칼트랜스(Caltrans, 캘리포니아 철도 회사)의 부동산을 이용해 노숙인 쉼터를 만든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칼트랜스는 고가 도로 아래에 대피소를 짓는 데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37. 정신 질환자들을 격리 수용하는 건 어떤가요?
= 아픈 사람들을 안 보이게 치우는 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환자의 권리와 이들을 강제로 치료하는 정부의 권한 사이에 절충 지점을 찾아야 합니다.

38. 노숙인 가족에게 연락해서 집으로 데려가라고 하면 되지 않나요?
= ‘홈워드 바운드(Homeward Bound)’ 프로그램이 정확히 그 일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2005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집으로 보낸 노숙인들이 1만 명 이상입니다.

39. 노숙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한가요?
= 일시적으로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솔트레이크시티의 경우를 보면 사라졌던 노숙인이 다시 나타납니다. 휴스턴에서는 지난 8년 동안 노숙인이 54% 줄어든 경우도 있었고요. 다만 정부가 주택 지원 예산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40. 노숙인들에게 거리 청소를 시키고 비용을 지급하는 건 어떤가요?
= ‘다운타운 스트리트 팀(Downtown Streets Team)’이란 프로그램이 그런 일을 하고 있죠. 그러나 노숙인들을 모두 고용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하고 현실적으로 최저임금을 받아도 노숙을 벗어나기는 어렵죠.

41. 노숙인들이 지원을 받는 데 어떤 조건이 있나요?
= 카운슬러와 재정 관리자들에게 협력해야 합니다. 의지가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일단 쉼터에 들어가야 합니다. 지원 주택 입주 조건으로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집이 생기면 문제를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42. 마약과 알코올을 끊는 조건으로 주거를 제공한다면 달라질까요?
=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카운슬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단 이들을 거리에서 구출한 다음 중독에서 벗어나게 돕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주택 우선’과 ‘치료 우선’ 사이에서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중독자들의 40~60%가 재발하게 되죠. 이들은 다시 거리로 나오게 되고요.

43. 이들을 구출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거리를 떠나지 않으려는 노숙인들이 있다면 이유가 뭘까요?
=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집과 일자리를 원합니다. 정신 질환이 심한 사람들은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도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려 자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44. 노숙인들에게 일을 시키고 숙박이나 음식 바우처 같은 걸 줄 수는 없나요?
= 이런 프로그램이 있죠. 직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복지 수당을 조금 더 받을 수 있습니다. 다운타운 스트리트 팀(Downtown Streets Team)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노숙인들에게 일을 하는 조건으로 음식이나 마트 상품권을 줍니다.

45. 규칙을 따르지 않은 노숙인들은 어떻게 하나요?
= 광범위하고 전문적인 사례 관리자와 상담사에게 맡기는 게 가장 효과적입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프로그램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효과적인 옵션이 아닙니다.

46.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돈이나 자원을 기부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곳은 어디입니까?
= 비영리 단체들이 많습니다. 주택과 쉼터, 음식, 의복 등을 지원합니다.

47. 노숙인 문제를 해결한 다른 나라 사례가 있나요?
= 다른 나라들은 국가 의료 시스템과 생활 임금, 실업 수당, 주택 프로그램을 비롯해 최소한의 생활 지원이 법으로 보장되기 때문에 우리 같은 심각한 노숙인 문제는 없습니다.

48. 노숙인에 대한 세 가지 문제와 세 가지 해법을 정리해 주세요.
= 세 가지 문제는 일자리를 잃고, 집을 잃고, 약물과 알코올에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 해법은 주택 지원과 고용 지원, 그리고 재활 프로그램이고요.

49. 그동안 우리가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한 여러 방법 가운데 어떤 게 가장 효과적이었나요?
= 1980년대에는 노숙인 쉼터를 만들고 그들이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했죠. 그런데 그걸로 안 되니 상담과 주택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했고요. 그걸로도 해결이 안 되니 1990년대에는 강경하게 법대로 퇴출도 해봤습니다. 2000년 들어서는 현장에서 상담을 하고 노숙인 시설에 수용하고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최근에는 효과적으로 노숙인들을 관리하기 위해 노숙인들을 추적하는 강력한 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예산이 부족하죠. 1980년대에 연방 주택 프로그램이 축소되면서 노숙인이 추세적으로 늘어나고 있죠. 40년 전에 삭감된 예산은 복구된 적 없습니다.

50.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서부 해안 도시가 뉴욕과 같은 동부 해안 도시보다 1인당 쉼터 침대가 훨씬 적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뉴욕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적 있나요?
= 뉴욕은 1980년대에는 모든 노숙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할 권리를 의무화했습니다. 쉼터를 거부하면 처벌하는 법도 통과됐고요. 맨해튼에서 노숙인들을 몰아냈지만 6만 1000명의 노숙인 대부분이 도심에서 떨어진 보호소에 살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서부 도시들은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 쉼터 대신에 주거 지원을 늘리고 있습니다.

51. 교회들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 많은 교회가 노숙자 구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합니다.

52. 이동식 화장실을 더 늘리면 안 되나요?
= 이미 수십 개의 이동식 화장실에 연간 3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수백만 달러를 더 늘릴 계획이고요.

53. 노숙인 쉼터에 가고 싶지는 않지만 샤워를 하고 싶은 노숙인이 있다면 어디로 데려가면 되나요?
= 휴대용 샤워 시설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들이 있습니다. 방문 센터나 공공 수영장 등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에 연결해 줄 수도 있습니다.

54.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인 지원 예산이 연간 3억 달러 이상입니다. 그런데도 노숙인이 계속 늘어나고 있죠?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가나요?
= 노숙인 지원 부서 운영비와 비영리 단체들과 연계된 거리 상담, 의료 지원, 재활 프로그램 등의 서비스 예산으로 쓰게 됩니다. 20% 정도가 노숙인 쉼터에 들어가고 절반 정도는 95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주택을 지원하는 예산으로 들어가고요.

55. 1인당 얼마를 지출하고 있나요? 다른 도시들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 단순히 예산을 사람 수로 나누는 건 정확한 비교가 안 됩니다. 그리고 다들 기준이 다릅니다.

56. 샌프란시스코는 노숙인 지원을 위해 얼마를 지출합니까? 더 늘었나요? 줄었나요?
= 20년 전에는 연간 6000만 달러를 썼습니다. 5년 전에는 연간 1억 6500만 달러로 늘었고요. 이 가운데 절반은 지원 주택에 투입됐습니다. 노숙인 지원 부서 예산은 2억 8500만 달러로 늘었습니다. 역시 절반 정도가 지원 주택에 투입됩니다. 그리고 노숙인 예산으로 잡히지 않는 법 집행 등의 비용이 더 있죠.

57. 이렇게 지출하는 돈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나요?
= 날마다 거리에 고통 받는 노숙인들이 넘쳐나는 걸 보면 낙관하기 어렵죠. 노숙인이 넘쳐나는 대도시들은 수십 년 동안 학습된 모범 사례를 따르고 있습니다.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임시 숙소를 제공하고 만성 노숙자들을 상담하고 지원합니다. 공적 자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노숙인들이 천문학적인 규모로 늘어났을 것입니다.

58. 노숙인 예산에 대한 비용 관리 보고서 또는 감사 결과가 있습니까?
=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인 프로그램은 연방 기금 지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해마다 효율성 평가를 받습니다. 여러 위원회와 관련 부서에서 수행하고 있고, 감사도 받습니다. 하지만 더 엄격한 평가와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지적은 늘 있죠.

59.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제로 뭘 하고 있습니까? 공무원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노숙인이 지금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연방 정부가 저소득층 주택 지원을 줄이면서 노숙인이 구조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열악한 의료 시스템과 소득 불평등, 제도적 인종 차별도 원인입니다. 노숙인의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도 있지만 집을 잃고 친구네 집 소파나 쉼터를 전전하는 사람들도 있죠. 공무원들은 장기 노숙인에 대한 해법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기도 하고, 쉼터는 늘 부족하고 약물 남용이나 정신 질환 등의 문제도 계속 재발하기 때문에 효과를 보기 어렵죠.

60. 땅값이 싼 다른 카운티에 노숙인 시설을 크게 지으면 안 되나요?
= 어느 도시도 다른 도시의 문제를 떠안으려 하지 않죠. 하지만 계속 지역 사회와 협의해야 합니다.

61. 도시 외곽에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드는 건 어떨까요?
= 여러 차례 검토했지만 사람들을 멀리 보내는 건 현실적인 대안이 아닙니다. 노숙인들도 이곳이 생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필요로 하고 의존하는 것들(급식소나 상담 서비스, 친구, 가족 등등)과 가까이 있기를 원하죠. 강제로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이들이 건강하고 안정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데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62. 주택 부족을 강조하는 것 같은데 혹시 치료와 보살핌이 더 중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두 가지 모두가 중요합니다. 샌프란시스코 노숙인 예산의 절반 정도가 상담 서비스와 결합된 지원 주택에 투입됩니다.

63. 마약 중독자들이 거리에 돌아다니면 위험합니다. 이건 공공의 안전 문제입니다. 왜 좀 더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죠?
= 샌프란시스코는 처벌 보다는 끌어안고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출직 공무원들의 고뇌도 크죠. 경찰도 마약 단속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심각한 중독을 가진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들죠. 감옥이나 교도소에서 약물 치료를 받긴 하지만 부실합니다. 수감자들은 석방된 뒤에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곤 합니다. 수십 년에 걸친 경험에 따르면 노숙인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대가로 약물 치료를 하는 조건을 내거는 건 효과적이지 않았습니다. 일단 수용하고 함께 치료를 해야 합니다.

64. 연방 정부가 저소득층 주택 지원 예산을 줄이고 있는데 이게 샌프란시스코의 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 노숙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주택이 줄어들죠.

65. 노숙인 단체에 왜 이렇게 휘둘리나요?
= 누가 시장이 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비영리 단체와 협업은 중요하죠. 하지만 노숙인 단체가 실제로 정책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66. 노숙인들의 요구는 뭔가요?
=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이 요구하는 해법도 다양하고요. 어떤 사람들은 더 나은 일자리와 주택 공급이 해법이라고 생각하고요. 다른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더 많은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67. 사실 이건 마약 문제 아닌가요? 노숙인 문제는 그 다음이고요.
= 두 문제는 관련되어 있지만 별개의 문제입니다. 약물 남용이 심각하고 답답하긴 하지만 중요한 건 중독자들이 노숙인으로 남아있으면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체포한다고 해서 마약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재활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68. 샌프란시스코는 노숙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비영리 네트워크에 의존합니다. 이들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확보하고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합니까?
= 60여개의 비영리 단체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도 기부금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정부 지원금이 크죠. 해마다 평가를 받고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지원 예산을 줄이거나 없앱니다. 공무원들이 직접 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용은 적게 들지만 일관된 관리가 어렵습니다.

69. 미국 전체에 노숙인이 300만 명이나 된다는데, 지방 정부가 해결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 아닌가요? 심각한 국가 위기라고 보고 연방 정부가 예산을 늘려야 하지 않나요?
= 전문가들은 연방 정부가 1980년대에 삭감한 주택 기금을 복구하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울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 국민의 3분의 1 가량이 빈곤선 이하에 살고 있습니다. 노숙인이 줄어들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도 연방 정부는 저소득층 지원을 계속 줄이고 있습니다. 300만 명이라는 추정치는 연간 누적 기준이고, 연방 정부는 60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70. 막대한 이익을 얻는 기술 기업들이 삶의 질 저하에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요?
= 샌프란시스코의 부동산 가격이 치솟은 데는 기술 기업들 책임도 있죠. 젠데스크와 세일스포스 등 일부 기업들이 노숙인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71.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요인을 분석해 봤나요?
= 샌프란시스코 조사에서는 실직(26%), 약물 남용(18%), 퇴거(13%), 동거인과의 갈등(12%), 정신질환(8%), 이혼이나 결별(5%) 순이었습니다.

72. 왜 일을 하지 않나요?
= 신체 장애나 정신 질환이 있거나 약물 중독인 경우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죠. 저임금 노동은 물가가 비싼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에서 생계를 유지하기에 충분하지 않고요.

74.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정신 건강 의료비 지원을 삭감하면서 노숙자가 크게 늘어난 것 아닙니까?
=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숙인 가운데 3분의 1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이 비율이 39% 정도 됩니다.

75. 주거와 연계된 중독 치료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 전체 노숙인의 40% 정도가 약물 남용이지만 만성 노숙자들은 이 비율이 더 높죠. 주택 지원 프로그램은 이들을 약물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 노숙인 지원 주택이 더 많습니다.

76. 노숙인들에게 돈을 주는 것이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나요?
= 누군가는 마약이나 술을 살 것이고 누군가는 식사를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돈을 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지원 프로그램은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깡통에 동전을 던져주는 것보다 지원 프로그램에 기부를 하는 게 좋습니다.

77. 노숙자들이 도움을 받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보호소의 규칙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파트너나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쉼터가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요. 약물 공급이 쉬운 곳에서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습니다. 단순히 환경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우도 있고, 결정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정신 질환이 심각한 경우도 있습니다.

78. 보호받지 못하는 노숙인은 어떻게 치료를 받습니까?
= 무료진료소가 있습니다. 만성적인 노숙자들은 저커버그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과 시청 근처의 톰 와델 도시 건강 클리닉에 크게 의존합니다. 두 곳 모두 노숙인 치료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79. 노숙인이 아니면서 노숙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도 있나요?
=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의 절반 정도가 보조금을 받는 주택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집이 있지만 음식이나 마약을 사기 위해 구걸을 하는 것이죠.

80. 낮에는 구걸하고 저녁에는 멋진 차를 타고 퇴근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입니까, 아니면 도시 전설입니까?
= 도시 전설입니다.

81. 구걸하는 사람들 수입은 어느 정도인가요?
= 하루 2달러에서 100달러까지 다양합니다.

82. 구걸하는 사람들은 자기 영역이 있나요? 영역 다툼도 하나요?
= 영역이 있지만 느슨합니다. 그것과 별개로 서로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일반적인 규칙입니다.

83. 공중 화장실이 있는데도 길거리에 용변을 보는 이유가 뭔가요?
= 많은 건물들이 노숙인 출입을 막고 있죠. 공중 화장실이 곳곳에 있지만 단순히 멀다는 이유로 안가기도 하고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는 노숙인들은 화를 내거나 좌절하면서 화장실을 찾는 것조차 번거롭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정신 질환 때문이기도 합니다.

84. 길거리에 오줌을 누고 마약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는 걸 금지해야 하지 않나요?
= 모두 불법이지만 어느 정도로 법 집행을 할 것인지는 커뮤니티가 결정해야 합니다. 모두 감옥에 가둘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산타크루즈는 샌프란시스코보다 좀 더 엄격합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경찰이 너무 강압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 뿐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연방법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 사람들이 밖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고 있죠. 노숙인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 주고, 약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과 길거리에 소변을 보지 못하게 하고 인도를 가로막지 못하게 단속하는 것 사이에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물론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많습니다.

85.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왜 검사를 받거나 입원하지 않고 길거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걸까요?
= 단순히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체포하거나 치료 시설로 데려갈 수 없습니다. 법적 조치를 취하려면 자신이나 타인에게 명백한 위험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치료에 대한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 방대한 Q&A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역시 뾰족한 해법은 없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이 수많은 토론과 실험, 실패, 보완을 거듭하면서 다다른 결론은 이들 역시 우리의 이웃이고 이들을 외면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만큼 노숙인이 계속 더 늘어날 것이고 더 많은 비용과 희생을 치러야 하고 결국 우리 모두의 불행으로 돌아오게 된다. 당장 필요한 것은 이들에게 지붕이 있고 닫을 수 있는 문이 있는 독립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집이 생기면 비로소 술과 마약을 끊고 일을 찾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이 길거리의 중독자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집을 잃고 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있다면 해법이 달라질 수 있다.

(이정환의 ‘문제 해결 저널리즘’에 실린 원고 가운데 일부입니다.)

“본질과 구조에 대한 질문, 해법과 과정을 추적하라.”

“솔루션 저널리즘, 조직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안녕하세요. 미디어오늘 이정환 대표입니다. 오늘은 “솔루션 저널리즘과 저널리즘 씽킹 방법론”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3년 전부터 솔루션 저널리즘을 한국에 소개하고 교육도 하고 있는데요. 여전히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거 우리가 늘 하던 거 아냐?” “언론이 답을 내놔야 돼?” “언론은 사실을 전달하고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게 일이지 답을 찾는 건 정치의 역할 아닌가?”

‘솔루션 저널리즘(solution journalism)’은 언론이 답을 내놓겠다는 게 아닙니다. 단어가 선입견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정확하게는 ‘솔루션 포커스드 저널리즘(solution focused journalism)’, 그러니까 해법을 이야기하는 저널리즘이라기 보다는 해법에 집중하는 저널리즘, 해법을 모색하는 저널리즘에 가깝습니다. 문제를 다루는 보도는 이미 넘쳐나니까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다루는 보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문제는 비명을 지르고 해법은 속삭인다(Problems scream, Solutions whisper)”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아야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문제를 들춰내고 고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원래 이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많은 언론 보도가 사람들을 냉소하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들죠.

문제는 비명을 지르고 해법은 속삭인다.

우리가 쓰는 기사에는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왜(why), 어떻게(how) 등의 사실이 충실하게 담겨 있습니다. 사실은 사실 그것만으로도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좀 더 나가서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What Now)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 솔루션 저널리즘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고 도전하고 ‘희망을 가질 이유(reason to hope)’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우리는 생리대가 없어서 운동화 깔창을 생리대처럼 쓴다는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기사로 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에도 관심이 없고요. 그래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생리대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 여학생이 10만 명이라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게 해법이야.” 언론이 툭 답을 던져 놓을 수 있으면 좋겠죠.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만 해법이 무엇인가 찾고 해법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추적하고 기록하고 무엇이 최선인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검증하면서 최선의 해법에 접근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해서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언론의 부정적인 편향이 독자들의 냉소와 무관심을 부추기고 편견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언론의 오래된 습관입니다. 기사가 되는 것에 집중하고 좀 더 섹시한 ‘야마’를 만들기 위해 사실을 재단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부분이 강조되고 맥락이 뭉뚱그려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달리 해보자는 제안입니다. 가능성을 이야기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폭리를 취하고 있는 거대 제약회사들을 비판할 수 있지만 싼값에 에이즈 치료약을 보급하는 방법을 보도할 수도 있습니다. 저소득 계층의 납 중독 실태를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보상을 받아내고 어떻게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웠는지를 보도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답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답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물어볼 수 있겠죠. 무엇이 답일까요? 답을 찾았거나 찾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나요?

미국에서는 교도소 수감자의 20%가 정신 질환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감옥에 주립 병원보다 더 많은 정신질환 환자가 수용돼 있는데 이들이 출소 직후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값비싼 회전문(expensive revolving door)’이라고 불렀습니다. 교도소를 더 짓고 교도소 침대를 늘리는 것보다 정신건강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 세금을 줄이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겁니다.

그래서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카운티에서는 정신 건강 및 약물 남용 대책과 노숙자 서비스를 통합하고 치료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교도소와 병원, 법원, 경찰 등이 모두 별도의 사일로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협력을 끌어낸 것이죠. 경찰이 마약 압수 자금을 기부하기도 했고요. 그 결과 5년 동안 5000만 달러의 사회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카이저헬스뉴스라는 신문이 이 모든 과정을 추적하고 꼼꼼하게 기록했습니다.

누가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했느냐.

솔루션 저널리즘에서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확장성(scalability)’과 ‘복제 가능성(replicability)’입니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데이빗 본스타인(David Bornstein) 대표는 “누가 했느냐(Who dunnit) 보다 어떻게 했느냐(How dunnit)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해법이 주인공이 돼야 하고 일회성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확장하고 복제돼야 비로소 시스템을 바꾸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흑인 산모들의 모유 수유 비율은 59% 밖에 안 됩니다. 백인은 75%, 히스패닉은 80%인데요. 신생아 생후 6개월 동안 모유 수유만 하는 비율은 흑인 산모가 30%, 백인은 47%, 히스패닉은 45%로 차이가 큽니다. 저소득 흑인 산모의 아이들이 병에 더 잘 걸리고 영아 사망률도 높습니다. 흑인 여성들이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느라 산모 교육을 못 받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예 시절 흑인 유모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명확하지만 해법을 찾는 과정은 모호하고 불확실합니다. 디트로이트 세인트존 메디컬센터에서는 2011년부터 흑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산모교육(Mother Nurture)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유 수유 경험이 있는 흑인 여성들이 다른 흑인 여성들에게 모유 수유를 격려하고 상담하면서 오래된 편견을 깨뜨린 것이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대부분이 흑인인 이 병원 산모들의 모유수유 비율이 46%에서 4년 만에 64%로 뛰어올랐습니다.

미국의 시애틀타임스는 2013년부터 ‘에듀케이션 랩(Education Lab, 교육 실험실)’이라는 이름으로 교육 혁신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교육 문제를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해결해 보자는 접근이었죠. 최악의 학교를 찾아가서 왜 이렇게 엉망인지 고발하는 대신에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조금씩 바꿔나가는 학교를 찾아서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는지 추적하고 기록하면서 함께 답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를 테면 문제 학생들을 학교에서 퇴출시키는 대신에 학교에 나오게 해서 읽기와 쓰기 과제를 주고 별도의 포럼과 그룹 상담 등을 진행하면서 다시 수업에 합류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교사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도 있었고요. 놀라운 건 교사나 친구들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행동이 바뀌더라는 겁니다. 이 시리즈 기사는 많은 교사와 부모들에게 영감을 줬습니다.

시스템 씽킹과 디자인 씽킹.

보스턴글로브의 특종 보도를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기자들이 사건을 잡았다고 기사를 내보내자고 말하니까 편집국장 마틴 배런이 이렇게 말합니다. “조직에 초점을 맞춰요. 사제 개개인 말고. 관행과 방침에 대해. 교회가 체계를 조작해서 고소를 면했다는 증거를 가져와요. 바로 그 사제들을 다시 교구로 보내고 또 보냈다는 증거와 그리고 체계적으로 위에서 지시했다는 증거도. 시스템을 고발해야죠.”

솔루션 저널리즘의 방법론으로 시스템 씽킹(system thinking)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겠습니다. 시스템 씽킹은 사건을 관찰하고 패턴을 발견하고 구조를 이해하고 모델을 정립하면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입니다. 각각의 사건을 따로 보지 않고 관계와 연결에 집중하면서 단기적인 해법과 구조적 해법의 균형을 찾는 것입니다. “시스템을 고발하라”는 마틴 배런이 기자들에게 요구한 것이 바로 시스템 씽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에서 구조에 접근하는 것이 시스템 씽킹이라면 구조에서 해법을 끌어내는 것이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입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습니다. 디자인 씽킹은 단순히 디자이너들처럼 생각해 보자는 차원을 넘어 문제에서 기회를 찾고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테스트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에 부딪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좀 더 나가면 스타트업에서 활용하는 린(lean) 방법론을 디자인 씽킹에 접목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솔루션 저널리즘의 구체적인 전략으로 제안하는 것이 저널리즘 씽킹(journalism thinking) 방법론입니다. 첫째, 사실을 취사선택하고, 둘째, 문제를 정확하게 규정하고, 셋째, 질문을 시작하고, 넷째, 반론을 듣고 검증하고, 다섯째, 핵심을 뽑고 해법을 끌어내는 과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셋째와 넷째 단계를 계속 반복하면서 핵심에 다가가는 과정입니다. 저널리스트가 가장 잘 하는 일이고 가장 잘 해야 하는 일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이해하려면 무엇이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닌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영웅 만들기는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닙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만 적당히 박수를 치고 끝나는 걸로는 안 됩니다. 정치가 나서야 한다거나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거나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등의 이른바 ‘씽크탱크 저널리즘’을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잘 만든 기획 기사의 마무리가 전문가 좌담이나 인터뷰로 끝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거나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거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등의 거창하고 준엄한 열린 결말을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이것만 하면 돼, 이른바 ‘실버 불렛(silver bullet)’도 답이 될 수 없고 즉각적인 후원이나 모금, 따뜻하고 눈물나고 감동적인 미담 기사도 솔루션 저널리즘과는 방향이 다릅니다.

데이빗 본스타인은 “‘이것은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다’, ‘또는 아이들을 도웁시다’, 이런 말을 늘어놓는 걸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고 확신하는가, 검증된 결과가 있는가, 성공 요인이 무엇이고 어쩌다 가능한 한 번의 사례인지 아닌지, 한계는 무엇인지, 비용이 너무 크지는 않은지, 정치적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해답을 찾는 과정, ‘실버 불렛’은 없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언제나 섹시한 해법으로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지난 2016년 80여개 언론사들이 모여서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SF Homeless Project)라는 이름으로 공동 취재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2017년 기준으로 노숙인이 7000명, 노숙인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 가운데 하나죠. 지역 언론들이 모여서 뭔가 답을 찾아보자고 나선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을 비롯한 지역 언론사들이 평범한 시민이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추적했고, 여러 정책적 과제들을 직접 실험하고 검증하면서 대안을 파고 들었습니다. 9개월 동안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 홈리스 보호소 건립이 앞당겨졌고, 기업 후원도 늘어났습니다. 노숙인 바우처 제도도 정착됐습니다. 그렇지만 노숙인들이 완전히 사라졌느냐? 그건 아닙니다. 이것만 하면 돼, 이런 답이 있을 수가 없는 문제죠.

우리가 눈여겨 볼 부분은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노숙인들에게 잠잘 곳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이들이 길거리를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막연하지만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것입니다. 일련의 프로젝트의 성과로 지난해 노숙인 지원 법안이 통과됐고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기업들에게 추가 세금을 부과하고 노숙인 약물 치료와 보호소 확충, 재활 지원 사업 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변화는 느리고 더디지만 원래 그렇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는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샌디에이고로 확산돼 ‘샌디에이고 홈리스 어웨어니스’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확장성’과 ‘복제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죠. 과정에 주목하는 언론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성공 사례에 그치지 않고 시스템을 바꾸는 실험이 지역을 넘어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기존의 관행과 습관을 바꾸지 않고는 언제까지나 남의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 언론에 부족한 것이 해답을 찾는 과정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우루루 몰려가고 현장을 중계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인터뷰하고 수많은 기사를 쏟아내지만 본질이 무엇인가 묻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고 사건의 구조를 읽고 질문과 토론을 제안하는 과정이 결여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란 게 명확한 기준과 프레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덴마크의 울릭 하게룹(Ulrik Haagerup)은 컨스트럭티브 뉴스(Constructive News)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개념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호주 등에서도 솔루션 저널리즘의 실험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일 수도 있고 컨스트럭티브 뉴스일 수도 있고 ‘저널리즘+디자인’일 수도 있습니다.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저널리즘의 확장에 대한 논의와 실험입니다.

울릭 하게룹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정적인 뉴스는 무관심과 냉소를 부르고 사람들을 공개적인 토론에서 이탈하게 만듭니다. 저널리즘은 현실과 현실의 인식 사이의 필터입니다. 저널리즘은 사회가 스스로 교정할 수 있도록 돕는 피드백 메커니즘(feedback mechanism to help society selfcorrect)이 돼야 합니다. 속보와 탐사 보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컨스트럭티브 뉴스, 그리고 기회에 대한 뉴스입니다.”

미국에서도 솔루션 저널리즘을 도입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에서 ‘솔루션 저널리즘 툴킷’이 곧 한국어로 번역돼서 출간될 계획인데요. 여기 많은 실전 사례들이 담겨 있습니다. 한 번 솔루션 저널리즘을 실험해 본 기자들은 다시는 이전의 기사 작성 방식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해법이 아니라 문제에 집중하는 기자들의 관행을 바꾸는 게 가장 어렵다는 고백도 있었습니다.

신문과방송의 인터뷰에 따르면 지역신문일수록 그리고 규모가 작은 신문일수록 솔루션 저널리즘의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오하이오주 맨스필드의 지역 신문 리처드소스(Richard Source)는 법정관리 직전에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7만 달러의 후원을 받아 회생했습니다. 프랑스의 니스-마틴(Nice-Matin)은 폐간 직전의 경영난에서 솔루션 저널리즘 실험 이후 유료 구독자가 70% 늘고 페이지뷰와 체류시간이 각각 300%와 400%씩 늘어났습니다.

피드백 메커니즘으로서의 저널리즘.

솔루션 저널리즘은 기자에게 답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답을 내놓을 수도 없습니다. 기자는 답을 찾는 과정에 함께 할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닙니다. 우리 기자들이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지고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죠.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해법을 주인공으로, 관점과 접근 방식을 달리 해보자는 것입니다.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변화의 희망을 불어넣는 적극적인 저널리즘이 필요합니다. 기자가 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함께 답을 찾아보자고 제안해야 합니다. 시민사회 진영과 협업도 필요합니다. 끊임 없이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참여를 끌어내야 합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저널리즘의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널리즘을 더욱 충실하게, 민주주의를 더욱 탄탄하게, 그리고 변화를 더욱 앞당기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언론에 저널리즘 씽킹 방법론을 제안합니다. 저널리즘의 신뢰가 바닥없이 추락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부정 부패를 폭로하는 것은 언론의 고유한 사명입니다. 하지만 갈등을 중계하고 분노를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프로세스를 바꿔야 합니다. 본질에 대한 고민, 구조에 대한 질문, 반론과 검증, 대안과 해법을 찾는 토론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이정환의 ‘문제 해결 저널리즘’에 실린 원고 가운데 일부입니다.)

“기자들이 모르는 세계, 누군가는 답을 알고 있다.”

데이빗 본스타인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 대표 강연과 인터뷰.

(다음은 2019년 11월24일에 열린 경기도 주최 경기뉴미디어컨퍼런스와 11월25일에 열린 미디어오늘과 아쇼카한국 공동 주최 솔루션 저널리즘 워크숍에서 데이빗 본스타인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 대표의 강연과 토론을 정리한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뉴욕타임스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저널리스트로 30년 가까이 일했습니다. 뉴욕 메트로 파트에서 범죄와 주택, 에이즈 등을 다뤘습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저널리스트로 일하면서 세상을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솔루션 취재를 하면서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신문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접하게 됐고 저널리즘이 현실의 절반밖에 보여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저는 새로운 이야기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이런 기사를 읽습니다. 지구 온난화와 테러, 빈곤, 폭력 등등. 매일매일 뉴스를 통해 이런 소식을 듣고 보죠.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조사했더니 뉴스를 회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48%가 뉴스를 싫어한다고 답변했습니다. 한국은 뉴스의 신뢰도가 가장 낮은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뉴스를 안 보는 이유를 물었더니 가장 많은 답변이 뉴스를 보면 우울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뉴스를 신뢰할 수 없다고도 하고요. 우리는 저널리즘이 피드백 시스템이라고 말합니다. 사회가 스스로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피드백을 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저널리즘이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의사가 여기 아프시군요, 여기도 문제가 있군요, 그리고 그냥 가는 거예요. 그런 진료와 비교할 수 있겠죠. 이거 정말 문제라고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걸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거죠.

솔루션 저널리즘이란 건 무엇일까요. 우리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사회 문제에 대한 반응을 추적하는 엄격한 증거 기반의 저널리즘(rigorous, evidence-based reporting on the responses to social problems)”이라고 정의합니다. 문제 만큼이나 해법과 과정을 이야기하자는 것입니다. ‘엄격한(rigorous)’이란 표현을 쓰는 건 사회가 어떻게 나아질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이터도 중요하고 증거도 많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해법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기자들이 관심을 가질까 확신이 없었는데 지금은 꽤나 많은 성과를 만들었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6년 동안 직원이 40명으로 늘어났고요. 400개 이상의 언론사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1만7000명의 기자들을 교육시켰고요. 지금은 미국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수업을 하는 대학이 30개가 넘습니다. 유럽과 아프리카, 남미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도가 아시아에서도 확산되기를 원합니다. 당연히 한국도요.

“10년 동안 썼는데 아무 것도 바꾸지 못했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나요? 지구 온난화와 부패, 양극화, 이런 문제들은 이미 알고 있죠. 우리의 질문은 그러면 어떻게 이런 문제에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답은 없죠.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부터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입니다. 기자들이 사회를 압박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잔소리를 하고 좀 더 관심을 가지라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계속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죠. 문제를 잘 알고 있습니다. 독자들도 문제를 모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절망하거나 방관하고 있죠. 저는 솔루션 저널리즘이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례를 살펴 볼까요? “Toxic neglect(방치된 중독)”라는 기획 시리즈 기사가 있습니다. 클리블랜드에서 납 중독이 문제가 됐죠.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납 중독에 노출되는가를 보여주는 지도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플레인딜러(Plain Dealer)라는 신문이 10년 동안 이 문제를 취재했습니다. 8세 이하의 아동 절반 가까이가 납 페인트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고요. 납 중독이 뇌와 신경의 손상과 공공 보건의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했죠. 이 지역이 특히 심각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문제라는 걸 알게 됐지만 어떤 변화도 없었죠. 그래서 우리 네트워크에 찾아와서 무엇이 문제인지 함께 답을 찾아보자고 제안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첫 번째로 던졌던 질문이 이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보도가 왜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을까요? 이거 정말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기사는 많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기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직접적이고 손에 잡히는 해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도시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로체스터에서 납 중독을 80% 정도 줄인 사례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누가 했느냐 보다는 어떻게 해결했느냐, 셜록 홈즈처럼 수사를 시작한 것이죠.

이 기사를 보세요. 현명한 도시는 이렇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변명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돈이 필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성공한 도시들의 사례를 보니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부모라면 옆집 애들은 이렇게 이렇게 해서 시험 성적이 올랐다는데 너도 이렇게 해볼래? 이렇게 압력을 줄 수 있게 된 거죠. 우리도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가능한데 왜 안 하지? 변명을 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해법과 목표, 벤치마크를 보여주고 행동을 하도록 압박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줘야 합니다.

핵심은 우리가 다른 잘 하는 곳에서 뭔가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 뿐만 아니라 실패 사례에서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죠. 클리블랜드에서는 솔루션 저널리즘 보도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여러 공무원들이 해고되거나 사임했고요. 조사 인력을 늘려서 낙후된 임대 주택부터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조사를 받지 않은 주택은 임대 계약을 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저널리즘이 직접적으로 정책 변화를 이끈 드문 경우였습니다. 10년 동안의 보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이죠.

저널리스트들은 경비견(watch dog)이지만 안내견(guide dog)도 될 수 있습니다. 정보와 아이디어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죠. 잘못된 것을 보여주는 것 뿐만 아니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많은 기자들은 스스로를 감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안내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냄새를 맡고 가치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근거 기반의 접근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우리나라나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아니라도 어딘가에 해법이 있거나 해법을 찾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거죠. 굉장히 흥미로운 사례가 많습니다.

덴버에서는 인신매매가 사회적 문제가 됐죠. ‘프리덤 드라이버 프로젝트(Freedom Drivers Project)’라는 시민단체가 트럭 운전사들을 교육시켜서 납치 신고를 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을 보급했습니다. 50만 명 이상의 트럭 운전사들이 이 프로젝트에 동참했고 2000건 이상의 의심 신고를 받아 실제로 1000명 이상의 희생자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이컨트리뉴스(High Country News)라는 신문이 이 과정을 보도했습니다.

미네아폴리스에서는 무슬림 청소년들이 급진화하는 경향이 있어서 사회적 문제가 됐습니다. 지역 신문사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덴마크의 사례를 발견했죠. 극단주의와 맞서고 대결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건네고 끌어안으라는 것입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분류돼 왔던 이들의 분노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사회의 위험을 줄일 수도 있다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저널리스트들이 꽃과 꽃을 날아다니는 꿀벌처럼 해법을 전달하고 변화의 희망을 퍼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발견하는 워치독이 아니라 가이드독으로 역할이 변하고 있는 것이죠. 이제는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고 뉴스를 쏟아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하이오에 리치랜드라는 작은 지역이 있었습니다. 트럼프 지지율이 70%가 넘는 곳입니다. 오하이오가 영아 사망률이 높은데 리치랜드는 그 중에서도 높은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 많은 토론을 했습니다. 리치랜드소스(Richland Source)라는 신문이 그 과정을 보도했습니다. 핀란드에서는 출산을 앞둔 가정에 골판지로 만든 베이비 박스를 보내줍니다. 기저귀와 내복, 침낭 같은 게 들어있는데 이 박스가 아기 침대가 되는 것이죠. 아이들이 침대에서 자다가 떨어져 죽는 경우가 많은데 박스 안에 이불을 펴고 여기에 아기를 재우는 겁니다.

이런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나 할까? 이런 걸 사람들이 과연 읽을까? 우리가 가서 엄마들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고민을 했죠. 커뮤니티 베이비 샤워라는 행사를 만들어서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다 같이 모여서 축하하는 이벤트를 만들었습니다. 잘 마주치지도 않던 사람들이 갓난 아이를 매개로 서로 모이게 된 거죠. 베이비 박스도 나눠주고요. 물론 신문사가 이런 일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정보를 공유하고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나눠주는 것이 저널리즘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올드 미디어와 뉴미디어, 지역 커뮤니티가 만나 변화를 만들어낸 사례였습니다.

‘누가 했느냐’보다 ‘어떻게 했느냐’에 집중하라.

여러분이 저널리스트라면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을 겁니다. 우리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사칭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우리는 영웅을 만들거나 미담을 퍼뜨리기 위해 모인 게 아닙니다. 제도를 변화시키는 게 목적이죠. 만능의 해법 같은 건 있을 수 없습니다.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일 뿐입니다. 많은 기자들이 월요일부터 5회 연속 시리즈를 통해 문제를 다루고 금요일 아침에 발행되는 결론 부분에 적당히 그럴 듯한 솔루션을 늘어놓습니다. 거대한 다큐멘터리를 펼쳐놓고 해결하고 싶으면 우리 웹 사이트를 방문하세요, 이런 식이죠. 가서 보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씽크탱크 저널리즘도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 이야기, 뻔하고 변죽만 울리고 재미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500달러를 주자, 이런 것도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닙니다. 캠페인이나 운동도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닙니다. 청원해 주세요, 투표해 주세요, 이런 것도 아닙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감명을 주고 희망을 전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문제에 대한 반응을 추적하는 접근 방법입니다. 세상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계를 보여줘서 지나친 미화를 방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이들의 건강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까? 그럼 이런 주제를 찾아보겠죠. 청소년 임신을 줄인 사례가 있었을까요? 제왕절개 비율이 낮은 병원이 있는지 찾아볼 수도 있겠죠. 또 출산 이후에 산후 우울증을 줄이는 가능성이 있는지, 피임과 낙태에 대한 접근이 있는지, 이런 차이점을 찾아보는 게 솔루션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적인 결과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고, 아동 빈곤이 심각한 곳과 덜 심각한 곳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자살률 통계를 볼 수도 있을 거고 범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가는 청소년이 어디가 많고 적은지, 잘하고 있는 곳을 비교하면서 차이를 가져오는 원인이 무엇인가 살펴볼 수 있겠죠.

정신 건강에 관심이 있다고 합시다. 미국에서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울증과 자살률이 적은 곳, 또는 특별히 수치가 떨어지는 곳을 주목할 수 있겠죠. 성별로 인종별로 계층별로 어떻게 다른지, 시스템이 있을 때 환경에 따라 시스템이 다르게 작동하지 않은지 살펴볼 수 있겠죠. 데이터를 살펴보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리서치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게 심플하지는 않아요. 언론인들이 뉘앙스가 있는 질문을 던져요. 이런 다른 결과를 내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제왕절개 비율이 높을 수도 있어요. 이게 대학 병원일 수도 있죠. 여러 가지 이유로 제왕절개가 늘어났을 수도 있겠죠. 병원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곳에 위치해 있을 수도 있고 말이죠. 양질의 연구인가 공부를 해야 합니다. 연구의 비용을 누가 지불하는가도 봐야 합니다. 연구자와 기금의 관계나 연구자들 이런 연구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등등, 엉망인 연구도 많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를 피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을 구하라는 게 아닙니다.”

이건 시애틀타임스에서 냈던 기사인데요. 미국에는 AP(Advanced Placement) 수업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수업을 채택하는 학생은 다른 학생보다 학업 성취도가 좋았다, 나빴다, 그리고 이걸 빨리 채택했던 사람들의 효과일 수도 있다, 프로그램을 잘 받아들였던 선생님들의 효과일 수도 있다 등등 이런 건 매우 현실적인 연구 결과죠. 다른 수업보다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단순히 좋다고 홍보하는 게 아니죠.

언론이 던질 수 있는 클래식한 질문이 있죠. 누가 잘 하고 있는가, 이 문제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무엇이 빠져 있는가, 무엇을 해결하지 못하는가, 이런 아이디어를 다른 곳에서 적용할 수 있는지, 비판자들은 뭐라고 말하는지, 어떤 데는 작동하고 어떤 데는 작동하지 않는지 등등 방해가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겠죠. 비용이 많이 들 수 있고,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정책으로 입안되지 못할 수도 있죠.

이건 가디언에서 쓴 기사인데요. 어떻게 인도의 마을에서 출산 중 사망률을 줄였는지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90%나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기사가 도널드 트럼프의 트윗보다 훨씬 중요한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했기에 90%나 떨어졌을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한국과 관련된 기사는 많지 않지만, 두 가지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학교가 비니까 남쪽 지역의 학교들이 문맹인 할머니들을 학교로 모셔왔다고 하죠. 한국도 출산율이 줄어들어서 고민이 많으시죠. 전남 강진의 대구초등학교는 올해 신입생이 없어서 문을 닫을 뻔 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70대 이상 할머니 7명을 신입생으로 받았습니다. 평생 글자를 읽고 쓸 줄 몰랐던 할머니들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또 다른 기사는 며칠 전 CNN 기사입니다. 한국의 청소년들 중에서 가장 휴대폰에 중독된 학생들이 많다는데요. 여기 재미있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일단 문제를 살펴보고요. 한국 청소년 세 명 중에 한 명이 스마트폰이 가까이 있으면 집중하기 어렵다고 답변했군요. 스마트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과 싸운다는 답변도 있었고요.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압니다. 원인을 찾고 해법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일단 청소년들이 운동할 시간이 없고요. 스마트폰 중독이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나라입니다. 스트레스를 스마트폰으로 푸는 것이죠. CNN 보도에서는 10~19세 청소년의 30%가 스마트폰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디톡스 캠프를 만들었습니다. 스마트폰 없이 스포츠와 미술, 토론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입니다. 테크놀로지 없이 기계 없이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이 기사에서는 이런 캠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효과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강요해서 했을 때는 효과가 없었다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솔루션은 아니지만 청소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햇빛이 가장 큰 멸균력을 갖고 있다고 하죠. 우리는 은밀한 것을 들춰내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건 20세기의 가정이었고요. 21세기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언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합니다. 한계가 나타나고 있고 독자의 수준도 높아졌고 사회 전체적으로 토론과 참여가 늘어났습니다. 20세기의 언론이 단지 비밀을 들춰내는 데 그쳤다면 21세기에는 저널리즘이 더 많은 것을 도울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 툴킷’ 한국판 나온다.

많은 대학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컬럼비아대학교 토우센터에서 이런 보고서를 냈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 보도가 기사의 인게이지먼트가 높다는 것입니다. 페이지뷰는 102%, 체류 시간은 80%, 페이지 읽는 시간은 10~25%나 늘었습니다. 공유 수는 230%나 늘어났습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신뢰와 관련된 것입니다. 기자들은 사람들이 우리가 정확하기 때문에, 최대한 팩트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관심이 있고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신뢰하는 것입니다. 관심은 매우 중요합니다. 관심이 있다는 건 지역 사회에 참여할 의지가 있다는 것이죠. 그게 낙태든 정신보건이든 약물이든 폭력이든 지역 뉴스에서 누군가가 지역 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보여주면 참여를 하게 되고 신뢰도 향상되고 언론사의 수익도 오릅니다. 스폰서도 생깁니다. 신문을 유료로 구독하는 비율도 늘어나고요.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를 아카이빙하는 ‘솔루션 트래커’에는 한국 사례는 아직 9개 뿐인데요.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 교재로 쓰는 ‘툴킷(toolkit)’이 최근에 한국어 번역이 끝나서 곧 공개될 것입니다. 한국의 저널리스트들이 우리 네트워크에 더 많이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세계에 어떻게 우리의 삶을 투영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반응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데이빗 본스타인과 패널들의 토론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 많은 기자들이 사건을 중계하거나 현장을 스케치하고 누군가에게 묻고 답변을 끌어내는 건 잘 하지만 해답을 찾는 과정에 참여하는 건 낯설고 막막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까요?

= 요가하는 분 계시죠? 요가를 하면 행동을 바꾸게 되죠? 좋은 느낌을 주는 것, 어떤 영향을 주면서 더 많이 참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문제를 들춰내고 우리가 얼마나 끔찍하고 비참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보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기사죠. 확인을 해야 합니다. 동시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도 알려줘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고민도 비슷하고 문제의 양상도 비슷합니다. 공동체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도 있고 환자들이 서로서로를 돌보도록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몇 달 걸리는 데 이게 가능하겠어? 저는 시도해 볼 만한다고 생각합니다.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날 테니까요.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는 독자의 충성도도 높고 사회적 임팩트도 높습니다. 요가를 하려면 일단 배우러 가야 합니다. 이런 좋은 이야기를 같이 공유하고 싶다는 기자들도 많습니다. 이제는 마음을 울리는 그런 보도가 필요합니다.

– 기자들의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뉴스룸의 문화와 관행을 어떻게 전환할 수 있을까요. 로체스터에서 10년 동안 취재했는데도 해법을 찾지 못한 걸 네트워크의 도움으로 했다고 했는데요. 한국에서도 그런 조직이 필요할 거라고 보십니까.

= 교육과 시스템 지원을 하는 네트워크가 있으면 당연히 좋겠죠. 대학이나 전문가 그룹이나 개별 뉴스룸이나 여러 가지 형태가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사회 혁신가 그룹일 수도 있을 거고요. 뉴스 조직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조직 혁신에 대한 몇 가지 솔루션이 있습니다. 덴마크의 컨스트럭티브 이니셔티브도 조직 혁신 툴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과학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에디토리얼 미팅에 가까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걸 취재할까 편집회의에서 추가적인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도 바뀐다는 것입니다. 누가 더 잘하고 있나,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가, 아이템 회의를 할 때 질문을 추가하는 것이죠. 우리가 흔히 솔루션은 속삭인다고 하는데요. 솔루션은 백그라운드에 있기 때문에 무시하기 쉽죠. 아이템 회의를 할 때 솔루션 관점에서 기사를 봤는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하는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에게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디 불편한 게 없냐고 물어보죠. 중요한 질문을 습관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주인공을 영웅으로 프레임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런 접근방식이 있더라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런 대단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소개하는 것은 오히려 독자들을 방관자로 내몰게 될 수 있습니다. 과정과 시행 착오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내야 합니다. 우리 목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해법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 솔루션이라는 단어가 오해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뭔가 완벽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 어떤 문제든 완벽한 해결책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접근 방식이 있고 여러 가지 차이가 있죠. 자칫 히어로 스토리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진짜 영웅들이 있죠. 그렇지만 기사를 읽는 사람이 내리는 결론이 이건 이 사람이 정말 특별해서 그래, 나는 특별하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곤란합니다. 성과에 집중하는 건 좋지만 사람이 부각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한국에서도 솔루션 저널리즘에 관심이 많습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 오늘날 저널리즘의 가장 큰 문제는 독자들이 저널리즘에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부정적인 기사가 넘쳐나고 기사를 읽으면 우울해지고 무력감을 느끼게 되니까요. 언론사들은 왜 뉴스에 돈을 안 내느냐고 묻는데, 문제는 제품입니다. 돈을 벌고 싶으면 제품을 바꿔야 합니다. 저는 솔루션 저널리즘이 중요한 경쟁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에버그린 스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2년 뒤 10년 뒤에도 다시 읽힐 만한 기사를 만들 수 있다면 저널리즘 위기의 대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언론사 경영진의 장기적인 선택과 결단이 필요할 거라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조금 가치가 낮다고 여겨지는 취재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하겠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모든 걸 다 취재하려고 합니다. 일단 사건이 생기면 우루루 몰려가죠. 우리 독자들에게 이런 중요한 걸 꼭 알려야 돼! 하지만 비슷비슷한 뉴스가 어디에나 있고 독자들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독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세요. 물어보세요.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그런 시도 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독자들이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기사를 그냥 하던대로 쏟아내고 있는 것이죠. 선택을 해야 합니다.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에디터들은 그런 걸 좋아하죠.

– 조직 혁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언론사 조직만큼 관성이 강한 조직이 없거든요.

= 솔루션 저널리즘을 실험하려면 뉴스룸에 최소 세 명이 있어야 합니다. 우선 편집국장이 열려 있어야 하고 에디터가 의지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경험이 많고 열정이 있는 기자가 필요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사건이 쏟아지고 있는데 근본적인 해법을 찾겠다는 시도가 한가하게 보일 수도 있죠. 편집국장을 설득하려면 다른 언론사의 사례를 보여주는 것도 좋습니다. 독자의 참여와 신뢰, 언론사 수익 확대 등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례는 많습니다. BBC와 뉴욕타임스, 그리고 지역의 작은 신문사들 사례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죠. 솔루션 저널리즘이 저널리즘의 미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솔루션 저널리즘이 저널리즘의 확장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 마지막으로 우리 네트워크와 구글과의 협업에 대해 소개하고 싶습니다. 미국에서는 구글 어시스턴트에 “Ok Google, Tell me something good(오케이 구글, 좋은 이야기 들려줘)”이라고 말하면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를 읽어주는 기능이 도입됐습니다. 아직 미국에서만 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과도 이야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구글에서 뉴스를 선택할 때 전통적인 저널리즘과 솔루션 저널리즘 중에 우선 순위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논의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솔루션 저널리즘 워크숍을 공동 주최한 아쇼카한국 이혜영 대표의 마무리 발언 가운데 일부입니다.)

= 가장 큰 걸림돌은 돈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솔루션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에 실리는 칼럼은 대부분 대학 교수들이 쓰는데요. 이걸 3분의 1로 줄이고 3분의 1을 솔루션을 찾고 있는 분들에게 맡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쇼카한국에서 교육 혁신가들과 정례 포럼을 하고 있는데요. 언젠가 한 번 신문 지면에 실리는 교육 관련 칼럼들을 모아봤더니 대부분 명망가들의 칼럼이고 실천과 대안, 해법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 전문가들이고 혜안도 있고 깊이도 있는 것 같지만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는 그냥 좋은 글인 것이죠.

= 며칠 전 소설가 김훈 선생님이 “아 목숨이 낙엽처럼”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노동자들이 1년에 300명씩 떨어져 죽는 나라에서 4차 산업혁명이고 태양광이고 인공지능이고 뭐고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정말 좋은 칼럼이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비약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스타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문제는 명확합니다. 우리는 왜 문제에 대한 해법을 고민하지 못할까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건 탄식하고 분노하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답을 찾는 누군가가 어딘가에 있겠죠.

= 인도네시아에서도 노동자들 추락 사고가 많아서 하루 7명씩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안전장비를 구입하는 것보다 사망 보상금을 주는 게 더 싸다고 할 정도였는데요. 해리 슐리츠타토(Harry Suliztiarto)라는 등반 전문가가 나서서 건설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어떤 부분이 취약한지, 어떻게 로프를 걸고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 등을 교육을 했다고 합니다. 2012년에 아쇼카 펠로우에 선정된 분입니다. 원래 암벽 등반 교육을 하던 사람인데 산업 안전 교육 전문가로 변신한 거죠. 워크앳하이트(Work at Height)라는 회사를 만들었고요. 저렴한 가격의 안전장비를 보급하고 보험사를 압박해서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 기업에 보험료를 더 받으라고 요구하고. 실제로 노동자들 대상으로 등반 대회도 하고 등등 변화를 끌어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칼럼을 쓰게 하면 이렇게 변화가 가능하겠구나, 독자들이 생각하게 되겠죠. 사회적 상상력이 풍성해 질 거고요.

= 며칠 전에 박스에 구멍을 뚫자는 칼럼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게 왜 안 되고 있는지, 구멍을 뚫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 구멍을 뚫을 경우 뭐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논의는 없죠. 박스에 구멍 뚫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안 한 기업도 비난 받을 일이지만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라면 비난하고 책임을 떠넘기고 상상력을 좁힐 게 아니라 이게 왜 안 되는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직접 실행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언론이 이런 논의와 토론, 실행의 과정에 함께 하면 좋을 거고요.

(다음은 솔루션 저널리즘 워크숍에 패널로 참여한 이선민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위원의 발언 가운데 일부입니다.)

= 우리가 저널리즘 혁신을 이야기할 때면 해묵은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와 스노우폴만 이야기하는데요. 솔루션 저널리즘이 어떻게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어떻게 변화를 만들고 추락한 저널리즘의 신뢰를 복원하는가 등등을 제대로 소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BBC의 솔루션 저널리즘 사례를 이야기할 수도 있을 거고요. 솔루션 저널리즘이 비즈니스적으로도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진흥재단에서 언론인 재교육에서도 한 섹션으로 들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배우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대학에서 예비 언론인들을 교육할 때도 솔루션 저널리즘 과정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더 읽을 거리.

“본질과 구조에 대한 질문, 해법과 과정을 추적하라.” http://www.solutionjournalism.kr/lecture/
비판과 냉소를 넘어, 솔루션 저널리즘을 제안합니다. http://www.solutionjournalism.kr/introduction/
솔루션 저널리즘을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http://www.solutionjournalism.kr/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