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괴물로 만드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괌에서 한국인 판사 부부가 아이들을 차량에 방치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현직 판사인데다 아버지가 유명 로펌 변호사라 더욱 화제가 됐던 사건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괌 판사 부부 사건.

2017년 10월 3일의 일이다. 휴가를 내고 괌에 놀러 온 가족이 비행기 출발을 몇 시간 앞두고 마트에 들렀다. 원래 해외 여행의 마무리는 친구와 가족들 선물 사는 게 필수다. 이 부부가 승용차 뒷좌석에 각각 여섯 살과 한 살 된 아이들을 남겨 두고 쇼핑을 하던 도중 아이들을 발견한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고 뒤늦게 나타난 부부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괌에 다녀온 사람들 대부분이 몰랐겠지만 미국 일부 주에서는 아이들을 차량에 방치할 경우 아동 학대로 간주한다. 그게 괌이다.

다행히 이 아이들은 일찍 발견돼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현지 뉴스는 “아이들이 땀에 흠뻑 젖은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고 보도했다. 다행히 아동 학대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고 벌금형을 받는 데 그쳤지만 이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당초 이 부부가 “3분 밖에 자리를 뜨지 않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괌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애초에 911 신고가 접수된 게 2시 30분,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한 게 오후 3시 무렵이었고 부부가 나타난 건 3시 15분 무렵이었다. 적어도 45분 이상 아이들을 방치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아이 아버지가 “나는 한국에서 변호사고 아내는 판사”라며 웃으면서 넘기려 했다는 사실이 보도돼 더욱 논란을 부추겼다.

나중에 아이 아버지가 밝힌 당시 상황은 이렇다. 출국 비행기는 오후 5시 10분. 이 부부는 친척들 기념품을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마침 사려고 했던 샴푸가 눈에 띄지 않아 다른 마트로 이동했고 아이들 어머니가 이왕 사러 가는 김에 아이들 색칠놀이를 사다 달라고 했다.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잠든 상태였고 비행기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부부가 각자 흩어져서 하나씩 사오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5분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아이 아버지의 해명에 따르면 마트에 도착한 시간이 2시 45분, 결제를 마친 건 3시 2분이었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뛰어가는 도중에 앰뷸런스와 경찰들이 이들이 타고 온 차를 에워싸고 있는 걸 발견했다는 이야기다.

아이 아버지는 경찰에게 “3분 밖에 안 걸렸다”고 말한 적 없고 웃으면서 “우리는 판사와 변호사라고 말했다는 것도 왜곡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론 보도와 주장이 엇갈리지만 이 부분은 명확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미뤄보면 ‘우리가 법을 잘 아는데 이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이야기했을 가능성은 있다. 다만 첫 번째 마트에서 마지막 결제 시간이 오후 2시 22분이고 문제의 두 번째 마트까지 이동 시간이 10분 이상 걸렸을 걸 감안하면 실제로 아이들이 방치됐던 시간은 최대 30분까지 됐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 아버지의 주장 가운데 믿을 수 있는 대목은 이날 경찰들이 금방 조사가 끝날 거라고 거듭 안심시켰고 이 말을 들은 아이 아버지가 오후 5시 비행기를 다음날 새벽 3시 45분 출발 편으로 변경했다는 사실이다. 누구라도 이 상황이면 적당히 오해가 풀리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분노하고 또 쉽게 잊는다.

그런데 그날 저녁 경찰이 다음날 아침에 판사를 만나야 한다고 통보했다. 절망에 빠진 이 부부는 다시 하루 뒤 새벽 3시 5분 출발 편으로 일정을 변경해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판사를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바로 풀려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건 이날 저녁 갑자기 아동보호국 직원이 찾아 와서 아이들을 격리 조치해야 한다면서 강제로 데려갔다는 사실이다. 말도 통하지 않은 외국인들을 따라 가게 된 아이들은 발버둥치며 울부짖었고 부부도 공포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을 빼앗긴 부부는 강제로 구금됐고 다음날 오후 2시에서야 겨우 판사를 만날 수 있었다. 판사 역시 냉소적이었다. 이걸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들 부부는 이날 저녁 9시가 다 돼서야 ‘기소 전 석방(realese order)’ 조치로 풀려났다. 그때까지도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겨우 모텔을 잡아 하루 저녁을 더 머문 부부는 결국 당초 출발하기로 했던 날짜에서 이틀이 지난 10월 5일 아침 9시 30분이 돼서야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40시간 가까이 부모와 떨어져 있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평생 그 곳에서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겁이 나서 밤새 울었다고 했다. 한국 언론에는 이런 맥락이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어린 아이들을 차에 남겨두고 떠난 건 명백한 잘못이다. 그게 3분이든 30분이든 비난을 피할 수 없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경찰을 불러준 것도 고마운 일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몇 가지 살펴볼 부분이 있다.

일단 이 가족은 판사와 변호사 부부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가혹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아동 학대로 의심할 만한 상황이 아닌 데도 아이들을 강제로 분리 수용하는 게 옳은 조치였는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괌 경찰은 아동학대 혐의에 대해 기소를 취하했고 법원은 아동을 차량에 방치한 부분만 벌금형을 선고했다. 물론 경찰은 매뉴얼에 따라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이었다.

언론 보도도 일부 과장이 있었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경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목격자가 처음 경찰에 신고한 시각이 2시 50분, 경찰은 4분 뒤인 2시 54분에 도착했다. 판사 부부가 도착한 건 3시 15분으로 기재돼 있다. 실제로 아이들이 방치된 시간이 최장 45분까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아이 아버지는 영수증이 찍힌 마지막 결제 시간이 3시 2분이라 주차장에 도착하기까지 13분이나 걸렸을 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대목은 누구나 비슷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절대 아이들을 차에 두고 마트에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잠깐의 실수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강제 구금되고 아이들을 빼앗기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게 단순히 이 부부를 비난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 맥락을 살펴보면 현지 경찰과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한국에 돌아와 보니 이 부부의 ‘머그샷’이 여기저기 떠 있고 온갖 군데에 신상이 공개되고 수백 건의 기사가 쏟아진 상황이었다. 아이들에게도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고 이 가족은 평생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아이 아버지는 나중에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남긴 글에서 “모두 제가 죽기를 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면서 “내가 죽어야 아내의 누명을 벗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흔히 ‘괌 판사 부부 사건’이라고 불렀지만 이건 부모의 직업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건이다. ‘어떻게 저렇게 생각 없이 행동할 수 있지?’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겠지만 실제로 이건 우리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아동의 차량 방치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 조직 노히트스트로크(No Heat Storke)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1998년부터 2021년 9월까지 차량에 방치돼 열사병으로 죽은 14세 미만 어린이가 905명이나 됐다. 1년에 38명 꼴이다. 한국에서도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공개된 것만 10건이 넘는다. 어린이집 통원 차량에서 방치된 어린이가 숨진 사건도 있었고 뇌 손상으로 의식 불명에 빠진 사건도 있었다.

여러 겹의 치즈를 관통하는 구멍.

워싱턴포스트가 2009년 3월, “죽음을 부른 부주의(Fatal Distraction)”라는 기사로 이 문제를 자세하게 다룬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아이를 차에 두고 내리나요?”라고 반문하겠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워싱턴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30년 전에는 이런 사고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운전석 옆 조수석에 어린이를 앉힐 경우 에어백이 터지면서 어린이들이 더 위험해 질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아이들을 뒷좌석에 앉히기 시작했다. 심지어 유아용 시트는 목뼈를 보호하기 위해 뒤쪽을 보게 돌려놓는 경우도 있었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가 놀라웠던 건 문제를 문제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파고 들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데 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보다는 이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정신 나간 부모의 탓으로 돌리고 비난하긴 쉽지만 그게 나와 내 가족의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접근 방식이 달라진다.

어느 날 오후였다. 관공서 직원인 린 밸푸어는 오후 늦게 부재중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 아침에 걸려온 베이비시터의 전화였다.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음성 메모로 넘어갔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두 사람은 원래 낮에도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곤 했기 때문에 전화 달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끊었다. 그런데 곧바로 전화를 걸어 온 베이비시터가 물었다. “브라이스는 어디 있어요?” 당황한 밸푸어가 말했다. “무슨 소리죠?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 순간 머리 속이 하얘지는 느낌과 함께 벨푸어는 창밖을 내다 봤다. 문을 열고 나가 밸푸어가 서 있는 테라스에서 계단까지 20미터 정도, 그리고 11계단, 두 걸음 지나서 12계단을 내려가서 다시 주차장까지 10미터 정도, 밸푸어는 뛰기 시작했다. 마치 그 시간이 30분 정도 걸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차 뒷좌석에서 축 늘어져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창백하고 빛나는 얼굴, 마치 도자기 인형처럼 반질반질 빛나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아, 너무 늦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지나가던 사람이 911에 신고 전화를 걸었는데 당시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구조대원과 통화 너머로 밸푸어가 “오, 맙소사, 안 돼”라고 절규하는 게 들린다.

영국의 심리학자가 제임스 리즌(James Reason)이 소개한 스위스 치즈 모델은 사소한 실수가 모여 어떻게 대형 사고를 만드는가를 설명한 이론이다. 구멍이 난 에멘탈 치즈를 여러 겹으로 쌓았을 때 우연히 모든 구멍이 하나로 만나 관통하는 구멍을 만들게 될 수 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비극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날 아침 밸푸어도 그랬다. 저녁 늦게까지 일하느라 잠이 부족한 상태였고 브라이스는 아침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서 칭얼거렸다. 평소에는 부부가 각각 차를 몰고 다녔는데 마침 한 대를 친척에게 빌려줘서 이날 아침에는 밸푸어가 남편을 태워다 줘야 했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기저귀 가방을 옆자리에 놓아두지 않고 뒷자리에 놓아뒀다고 한다. 밸푸어는 운전 중에 계속 친구와 통화를 했고 고민 상담을 해줘야 했다. 마침 공교롭게도 베이비시터가 며칠 전에 스마트폰을 바꾸는 바람에 새 스마트폰에는 밸푸어의 회사 전화번호가 등록돼 있지 않았고 스마트폰으로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이 시점이 원래는 “지금 곧 도착해요”라고 통화를 했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아이는 뒷좌석에서 쿨쿨 잠이 들어있었다.

만약 이날 아침 남편을 태워다 주지 않았더라면, 아이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왔다고 생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출근길에 누군가를 내려주고 회사로 차를 몰고 간다는 익숙한 패턴이 이날은 남편을 내려주는 것으로 해소되면서 착각을 불러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 내려줬으니 회사로 간다는 도식이 성립한 것이다.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만약 남편이 조수석에 앉느라 기저귀 가방을 뒤로 옮겨놓지 않았더라면 차에서 내리기 전에 옆자리의 기저귀 가방을 발견하고 뒷좌석의 아이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만약 베이비시터가 스마트폰을 바꾸지 않았다면 통화가 됐거나 베이비시터가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왜 오늘은 아이를 데려오지 않느냐는 통화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은 공교롭게도 모든 우연이 안 좋은 방향으로 겹쳤다. 아주 낮은 가능성이지만 그런 가능성은 우리 일상의 이면에 늘 존재한다. 여러 겹의 치즈를 관통하는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고 45도까지 치솟은 뜨거운 차 안에서 아이는 숨졌다.

2급 살인 혐의로 징역 40년형을 구형 받은 밸푸어의 재판에서 경찰 심문 과정에서 녹음된 파일이 공개됐다. “내가 내 아이를 죽였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밸푸어는 울부짖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들을 괴물로 만드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뜨거운 여름, 아이가 차 안에 방치되면 체온이 42도까지 치솟게 된다. 게다가 아이들은 같은 조건에서 어른보다 체온이 세 배 이상 빠른 속도로 상승한다. 실제로 아이들의 사망 원인은 대부분 고열로 인한 장기 손상이다. 몸이 붉다 못해 자주색으로 익고 몸 안의 장기가 자가 분해된다. 머리를 쥐어뜯은 채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안전벨트에 묶여 발버둥치다가 손톱이 다 빠진 채 발견된 아이도 있었다. 주차장에서 사람들이 내가 타고 온 차를 에워싸고 있어서 봤더니, 그 안에 내 아이가 죽어있더라, 이런 끔찍한 상황이 나와 상관 없는 남들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부모들의 직업도 다양했다. 경찰과 회계사, 군인, 목사, 학교 선생님, 대학 교수, 소아과 의사, 로켓 과학자도 있었다. 9시간 동안 방치된 아이, 뒷좌석에 아이가 죽어있는 줄도 모르고 죽은 아이를 태우고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온 아빠도 있었다. “스칼렛은 어디 있나요?” “앗, 오늘 안 왔는데요?” 그 말을 들은 아이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한 아이 엄마는 주차장에서 도난 경보기가 세 차례나 울리는 걸 창밖으로 내다봤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원격으로 알람을 해제한 뒤 다시 일을 했다고 한다. 이 엄마는 평생을 죄책감과 공포, 자기 혐오에 시달릴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의식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뭔가를 생각하면 그 뭔가가 경쟁적인 기억 시스템의 우선 순위를 차지하게 된다. 아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아이 생각만 하는 부모는 없고 8시간 동안 아이를 잊는 부모는 없지만 2분 동안 완전히 다른 일에 몰두하느라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는 의외로 흔하다는 이야기다.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괌에서의 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들 부부를 쇼핑하느라 아이들을 방치한 생각 없는 부모들이라고 생각했다. 통학 차량에 방치됐다가 숨졌다는 아이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는 문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들이 나쁜 엄마라서가 아니고 생각 없이 바쁜 아빠라서가 아니다. 실수와 우연이 겹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분노하거나 비난하고 애도하면서 이런 사건을 흘려 보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비극은 반복된다.

판사 부부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잠깐은 괜찮겠지 했을 것이다. 누군가가 신고를 하고 40시간 가까이 아이들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한 심리학자 에드 히클링(Ed Hickling)은 “우리는 우리의 세상이 이해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다고 믿으려는 욕구가 있다”고 말한다. 원칙을 지키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믿음.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그들이 뭔가 원칙을 어겼을 것이라 믿고 비난하게 된다.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고 믿고 싶은 것이죠. 그래서 그들을 괴물로 만드는 것입니다.”

비극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일단은 이 기사를 읽는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이 읽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을 괴물로 내몰지 않고 일상에 도사린 위험을 바로 보는 것이다. 이런 결론이 단순히 아이를 뒷좌석에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교훈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워싱턴포스트가 소개하는 해법은 다음과 같다. 스마트폰이나 핸드백, 사무실 출입증 등을 아이 옆에 두는 것도 좋다. 스마트폰을 집어들려면 아이를 확인해야 한다. 아이를 차에 두고 갈 수는 있지만 스마트폰을 두고 가는 경우는 많지 않고 10분 만에 스마트폰을 찾으러 다시 돌아올 것이다. 카시트를 뒷좌석에 설치하려면 카시트에 커다란 곰 인형을 앉혀 두는 방법도 추천한다. 아이를 카시트에 앉히려면 곰 인형을 조수석으로 옮겨야 한다. 곰 인형이 옆자리에 앉아 있으면 아이가 뒤에 앉아있다는 의미다. 어린이집이나 베이비시터와 시간 약속을 하는 것도 좋다. “9시 반까지 내가 애를 데려오지 않으면 저에게 꼭 전화를 해주세요.”

기사를 쓴 진 바인가르텐(Gene Weingarten) 기자는 취재 후기에서 20여 년 전 마이애미헤럴드 기자로 있던 시절, 어느 날 아침을 떠올렸다. 회사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 댈 곳을 찾고 있는데 뒷좌석에서 딸이 말을 걸었다. 세 살이었다. 그 순간까지 그는 아이가 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만약 문을 닫고 내렸으면 아이는 마이애미의 뜨거운 햇볕 아래 30분도 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기자는 뒷좌석의 딸과 눈이 마주친 순간, 울컥하고 메스꺼움이 올라왔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고 썼다. 다행히 이들은 평범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이 이야기를 딸과 아내에게 끝내 하지 못했다고 한다. 바인가르텐이 쓴 기사는 그런 메스꺼움을 독자들에게 안겨준다. 그리고 비로소 해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키즈앤카스(Kids and Cars, 아이와 자동차)라는 비영리 조직을 운영하는 자넷 페널(Janette Fennell)은 모든 승용차에 뒷좌석 센서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들기 위해 로비를 하고 있다. 시동을 끈 뒤에도 뒷좌석에 누군가 앉아있으면 경고음을 내도록 하는 센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직원이 아들을 잃은 뒤 관련 기술로 특허를 받았는데, 이걸 상업용으로 만들겠다는 업체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두 가지 이유인데 첫째, 만약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소송을 당할 위험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고 둘째, 심리적인 이유로 이런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아이를 뒷좌석에 두고 내릴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뒷좌석 센서는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고 비용도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뒷좌석 시트 무게를 확인하는 방법도 있고 차가 출발하기 전에 뒷문이 열린 적이 있다면 내릴 때 뒷좌석을 확인하도록 알람을 울리게 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닛산과 GM 등이 이런 시스템을 일부 도입하고 있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문제를 전시하고 비극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만들 수 없다. 우리 주변의 많은 문제는 불가항력이거나 갑자기 삶에 끼어 든 불운으로 시작된다. 워싱턴포스트 기사의 부제는 “Forgetting a Child in the Backseat of a Car Is a Horrifying Mistake. Is It a Crime?(차 뒷좌석에 아이를 두고 잊어버리는 건 끔찍한 실수다. 이것은 범죄인가?)”다. 비난을 거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해보는 것, 이게 워싱턴포스트가 제안하는 해법이다.

(이정환의 ‘문제 해결 저널리즘’에 실린 원고 가운데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