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루션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짧은 복습과 핵심 정리.

“신문을 펼쳐 들기가 괴롭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로이터저널리즘이 펴내는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뉴스를 보지 않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 적이 있다”는 문항에 한국 응답자의 54%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뉴스를 왜 보고 싶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논쟁에 휘말리기 싫어서”(56%)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뉴스를 보면 기분이 나빠져서”(44%), “진실이 아니라서”(26%),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18%) 등이 뒤를 이었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고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지만 문제가 문제에서 멈추면 우리의 질문은 “세상은 왜 이 모양이지?”에서 멈추게 된다. 독자들은 뉴스를 내려놓고 깊은 한숨을 쉬게 될 것이다.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로 끝나는 기사가 언론의 할 수 있는 최선일까. 국회에서 문제를 해결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5년마다 한 번 대통령을 잘 뽑는 걸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미국의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사회 문제에 대응하는 엄밀한 취재 보도(rigorous reporting about responses to society’s problems)”라고 정의하고 있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한 증거에 기반한 보도 기법(not only spotlights the problems but follows an evidence-based presentation of existing solutions)”을 말한다.

다음은 덴마크 ‘컨스트럭티브 인스티튜트(Constructive Institute)’의 최고경영자 울릭 하게룹(Ulrik Haagerup)의 2017년 국제뉴스미디어총회(INMA) 발표 가운데 일부다.

“부정적인 뉴스는 무관심과 냉소를 부르고 사람들을 공개적인 토론에서 이탈하게 만듭니다. 저널리즘은 현실과 현실의 인식 사이의 필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널리즘은 사회가 스스로 교정할 수 있도록 돕는 피드백 메커니즘(feedback mechanism to help society self correct)이 돼야 합니다. 속보와 탐사 보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컨스트럭티브(constructive, 건설적인) 뉴스, 그리고 기회와 가능성에 대한 뉴스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의 데이빗 본스타인은 “언론이 문제만 이야기하고 문제 해결의 과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건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계속 혼만 내고 잘한 일에 대해서는 칭찬은 전혀 안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의료와 교육, 금융 등 정부 공공 부문에 대한 신뢰를 잃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비판과 폭로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히려 문제 중심의 보도가 독자들이 세상을 보는 필터를 왜곡하고 잘못된 결론으로 이끌 위험이 있다는 게 데이빗 본스타인의 지적이다..

울릭 하게룹도 비슷한 말을 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언론의 사명이지만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언론이 비판적 기사를 써야 한다는 건 오래된 신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더 많은 뉴스를 원한다는 믿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은 뉴스에 익사할 지경이죠. 누가 더 빨리 보도하느냐, 누가 더 호되게 비판하느냐의 경쟁을 멈추고 대안과 해법을 이야기할 때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덴마크의 언론학자 캐서린 질덴스테드는 ‘거울에서 행동으로(From Mirrors to Movers)’에서 언론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언론이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사실이 전달되는 과정에 주관과 판단이 개입된다는 걸 알고 있다. 언론이 앞을 비추는 등대 역할을 해야 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의제를 제안하는 문제 해결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언론이 감시견(Watch dog)의 역할에 머물렀다면 안내견(Guide dog)이나 구조견(Rescue dog)의 역할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물론 여전히 언론은 관찰자에 머물 뿐 현실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원칙론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언론인들도 있고 사냥개의 역할을 자처하는 언론인들도 있다.

전북대학교 교수 강준만이 지적한 것처럼 솔루션 저널리즘은 자칫 주창 저널리즘(advocacy journalism)이나 감상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애초에 솔루션을 찾겠다는 시도 자체가 단순화의 위험을 안고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손쉽게 감동적인 미담이나 영웅 만들기에 빠질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접근 방식은 언뜻 해법처럼 보이지만 독자들을 더욱 냉소 또는 방관하게 만들고 해법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든다.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이미나는 연구 보고서 ‘분노 산업을 넘어서: 국민 갈등 해소를 위한 솔루션 저널리즘의 실천’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의 목표는 명확하지만 그에 대한 정의는 여전히 미완성이고, 실천 방안들도 실험적인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비판적 기사에 길들여진 독자들의 외면 속에서 실패한 운동으로 잊혀질지 아니면 보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주류 저널리즘의 한 줄기로 자리잡게 될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이야기다. 이미나는 다만 “솔루션 저널리즘의 등장이 사회적 무기력증과 언론 불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우리 언론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가 2020년 6월, 100여 명의 언론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도 흥미롭다. 한 언론사 편집장은 “솔루션 저널리즘이 기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동기를 부여한다”고 답변했다. 여러 언론사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이 독자들의 인게이지먼트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답변했다. 다른 한 언론사 기자는 “뉴스에 지친 독자들이 뉴스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언론사의 3분의 1 이상이 수익이 늘어났다고 답변한 것도 흥미롭다.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에 대한 반응을 비교한 설문 조사도 있었다. 755명의 미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3가지 주제에 각각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와 통상적인 스트레이트 기사, 두 가지 유형의 기사를 보여주면서 어느 기사를 더 선호하느냐고 물었더니 “기사를 읽고 느끼는 바가 컸다”는 답변이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는 59%, 기존 방식의 기사는 22%에 그쳤다. “이런 주제의 기사를 더 찾아보고 싶다”는 답변도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52%, 기존 방식의 기사는 36%로 차이가 컸다. “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싶다”는 답변과 “이 기사를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고 싶다”는 답변이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는 각각 47%와 35%로 높게 나타났다. 기존 방식의 기사는 28%와 22%에 그쳤다. 같은 기사를 스토리텔링의 순서를 바꾸고 주제를 고쳐 쓰는 것만으로도 열독률이 크게 뛰어오르더라는 이야기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언론이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솔루션 포커스드 저널리즘(solution focused journalism)’이라고 할 수 있다. 해법을 이야기하는 저널리즘이라기 보다는 해법에 집중하는 저널리즘, 해법을 모색하는 저널리즘에 가깝다. 문제를 다루는 보도는 이미 넘쳐나니까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다루는 보도가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

‘리베라시옹’의 솔루션 저널리즘 섹션 ‘리베 데 솔루션(Libé des Solutions)’의 에디터, 디디에 푸르케리(Didier Pourquery)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전통적인 개념의 뉴스 전달에 소홀하지 않으면서, 단순 고발이나 문제 지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유용한 저널리즘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스파크뉴스(Spark News)’의 창업자 크리스티앙 드보와르동(Christian de Boisredon)은 “단순히 문제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검증된 제안들을 찾아내고 이를 전달함으로써 정보의 균형을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진민정은 “솔루션 저널리즘은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명칭으로 인해 마치 해법 제시가 언론인의 역할이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암묵적인 거부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진민정에 따르면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최초의 정의는 1998년 베네치가 “특정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보도”라고 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문제를 들추는 것에 머무르면서 누군가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보도가 아니라 문제를 지적하면서 더 나은 방향을 제안하고 누군가가 그 방향으로 함께 가주기를 희망하는 저널리즘”이라는 설명이다.

전북대학교 교수 강준만은 솔루션 저널리즘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연구 결과들은 언론이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것에만 머무르고 시민들이 취할 수 있는 대응 방안에 대해 침묵할 경우엔 시민들은 문제에 압도당한 채 무력감을 느껴 ‘사회로부터의 도피’를 택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또한 모든 문제의 책임은 정부와 공직자들에게만 있다는 인식을 강화시킴으로써 시민에게 권리 못지 않게 요청되는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 벌어져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을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솔루션 저널리즘이 ‘좋은 뉴스’나 ‘행복한 뉴스’를 추구하는 건 아니며, 곧장 사회 문제의 해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어떤 뉴스건 문제를 제기했다면 해결에 대한 고민도 담아야 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책임감을 불러 일으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행동을 끌어내자는 것이다.”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은 솔루션 저널리즘과 비슷한 개념으로 쓰이지만 방법론이라기 보다는 규범적 개념에 가깝다.

스페인의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 인스티튜트(Instituto de Periodismo Constructivo)의 설립자 알프레도 카사레스(Alfredo Casares)에 따르면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은 솔루션 저널리즘을 포괄하면서 시민의 참여와 사회적 토론을 이끄는 저널리즘이 필요하다는 제안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는데 하나는 복잡한 내러티브를 끌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복잡한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의 과정에 다양한 맥락을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좀 더 실용적인 아이디어로 출발했지만 솔루션 저널리즘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지금은 솔루션 저널리즘과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이 거의 동의어처럼 쓰인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크리스티앙 드 브와르동(Christian De Boisredon)은 솔루션 저널리즘이 자칫 문제를 소홀히 여길 수 있다고 보고 임팩트 저널리즘(impact journalism)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역시 문제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접근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좀 더 실질적인 영향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담은 개념이다. ‘스파크뉴스(Spark News)’는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솔루션 오리엔티드 저널리즘(solutions oriented journalism)’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해결 지향 저널리즘’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과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 임팩트 저널리즘, 포지티브 저널리즘, 평화 저널리즘 등은 모두 시민(civic) 저널리즘이라는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강준만은 솔루션 저널리즘이 갈등유발형 저널리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1990년대 초반 미국의 공공 저널리즘(public journalism)의 논의와 맞닿아있다고 설명했다. 공공 저널리즘은 언론이 시민의 참여와 토론을 진작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고 관찰자가 아니라 해결사로 나서야 한다는 이론이다.

버지니아커먼웰스대학교의 카렌 맥킨타이어(Karen McIntyre)는 “1990년대 유행했던 공공 저널리즘 운동이 대중의 참여를 강조했다면 솔루션 저널리즘은 갈등의 서사에서 해결의 서사로 뉴스 프레임을 전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 참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시민 참여가 공공 저널리즘의 전제 조건이었다면 솔루션 저널리즘은 시민 참여를 이끄는 저널리즘의 역할에 더 집중한다는 의미다.

강준만에 따르면 참여 저널리즘이나 네트워크 저널리즘이 기술 발달의 측면에 중점을 둔다면 공공 저널리즘과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은 저널리스트의 직업적 사명을 강조한다. 평화 저널리즘이 저널리스트들에게 역사를 재검토하고 점진적으로 그 과정을 살펴볼 것을 권장한다면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과 솔루션 저널리즘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부경대학교 이상기가 노르웨이의 평화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을 인용해 정리한 정의에 따르면 평화 저널리즘은 갈등을 보도함에 있어서 승자와 패자 의 양자 대결 구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류의 진보에 어떤 도전과 기회를 가져다주는지에 주목하는 방식을 말한다.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은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을 저널리즘에 접목하려는 시도다. 공동체의 민주적 토론과 시민의 참여를 강조하는 공공 저널리즘의 계보를 이으면서 문제에 대한 반응과 해결 과정에 집중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모두 솔루션 저널리즘과 맥락을 같이 한다.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이 솔루션 저널리즘을 포괄하는 개념처럼 보이지만 강조하는 지점이 다를 뿐 언론의 네거티브 편향을 극복하고 문제 해결의 과정에 집중하자는 큰 맥락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가 정리한 솔루션 저널리즘의 네 가지 요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에 대한 대응에 집중하고 그 대응의 효과를 다룬다. 둘째, 가장 좋은 솔루션 저널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인사이트를 담고 있는 취재 보도를 말한다. 독자들이 우리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또 참여할 수 있는 교훈을 담고 있어야 한다. 셋째, 솔루션 저널리즘은 철저하게 근거에 기반한 보도여야 한다. 해법을 제안하려면 그 해법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해법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를 설명해야 하고 그 영향을 데이터로 입증해야 한다. 정말 뛰어난 아이디어는 근거가 부족해도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언급하고 그럼에도 왜 이 아이디어가 뉴스 가치가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넷째, 반드시 한계를 지적해야 한다. 완벽한 해법은 있을 수 없다. 특정 지역에서 가능한 해법이 다른 지역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차이를 지적하고 콘텍스트 안에서 해법을 설명해야 한다.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기도 했다.

W : What response does it address? (어떤 대응이 문제를 해결하는가.)
H : How it works, the “howdunnit”. (어떻게 작동하는가. ‘누가 했느냐’보다 ‘어떻게 했느냐’에 집중하라.)
O : Offers insight. (인사이트를 제공하라.)
L : Includes limitations. (한계를 명시하라.)
E : Most important, provides evidence of impact.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의 증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WHOLE’ 스토리라는 건 단순히 사실 전달에 그치지 않고 전체 맥락을 살린 스토리라는 의미도 된다. 단편적인 이야기가 아닌 ‘모든’ 측면을 충실하게 담는다는 중의적인 의미도 될 수 있다. 어떤 반응이 문제를 바로잡는가, 그 반응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통찰력을 제공하는가, 한계를 반영하고 있는가, 변화의 증거를 제시하는가 등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성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험과 실패,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 결국 문제와 대응(response)에 대한 이야기가 돼야 한다. 해법이 아니라 대응이라는 단어를 쓴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응 또는 반응을 통해 해법에 근접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