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냉소를 넘어, 솔루션 저널리즘을 제안합니다.

지난 5월22일,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센터에서 열린 국제뉴스미디어협회(INMA) 총회 첫날 마지막 세션이 끝나자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덴마크에서 온 울릭 하게룹 컨스트럭티브인스티튜트 최고경영자의 발표였다. 하게룹은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했다. “사실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 컨퍼런스의 주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페이스북 좋아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모바일 최적화나 뉴스룸 혁신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니까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행하는 월간 ‘신문과방송’에 실린 글을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 원문은 여기.)

하게룹은 “‘가짜 뉴스’는 오히려 진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면서 질문을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가짜 뉴스 때문일까요.” 하게룹은 미국 대선 직후 레슬리 문베스 미국 CBS코퍼레이션 회장이 했던 말을 인용했다. “미국에게는 불행이지만 빌어먹게도 CBS에는 좋은 일이다. 돈이 굴러 들어오고 있으니까.” 자조적인 표현이지만 상당수 언론사들이 트럼프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 범프(bump)’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당선 이후 석 달 동안 디지털 유료 구독이 27만6000명 늘었다. 2015년 한 해 구독자 증가에 맞먹는 규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당선 다음날 평소보다 세 배 이상 가입자가 늘어났고 베니티페어도 하루 만에 1만3000명이 늘어났다. 트럼프는 확실히 장사가 된다. 이미 대선 때부터 웹 트래픽도 늘고 구독도 늘었다. 얼 윌킨슨 INMA 최고경영자가 “트럼프가 저널리즘의 구원자라는 말을 내가 하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할 정도다.

2015년에 세상을 뜬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언론은 민주주의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언론이 쏟아내는 온갖 부정적인 이야기는 지도자가 아니라 포퓰리스트를 만들어낸다.” 많은 사람들이 욕하면서도 뉴스를 본다. 정치 혐오는 장사가 된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정치학과 교수인 토마스 페터슨도 이런 말을 했다. “문제는 언론의 자유주의 편향이 아니다. 네거티브에 대한 강한 선호가 진짜 문제다.”

언론의 본성, 네거티브에 대한 강한 선호

페터슨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미국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뉴스를 분석한 결과 트럼프에 대한 보도 가운데 부정적인 기사가 77%, 클린턴은 64%나 됐다. 긍정적인 기사는 트럼프가 23%, 힐러리가 36%로 집계됐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대선 보도에서 부정적인 기사의 비중이 꾸준히 늘어났다. 1960년에는 부정적인 기사와 긍정적인 기사의 비중이 각각 76%와 24%였는데 1980년대 들어 역전돼 2016년에는 29%와 71%까지 벌어졌다.

부정적인 기사가 트럼프의 지지율을 꺾지 못했으며 긍정적인 기사가 상대적으로 더 많다고 해서 클린턴의 지지율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온갖 추문과 폭로가 쏟아졌지만 오히려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정치 기사 뿐만이 아니다. 이민 관련 보도에서는 부정적인 기사가 84%, 무슬림 관련 보도에서는 87%를 차지했다. 보건 정책과 경제 관련 보도에서도 각각 71%와 70%가 부정적인 기사로 분류됐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아프리카에 굶어죽는 아이들이 넘쳐난다고 생각하지만 스웨덴의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 카롤린스카대 교수에 따르면 실제로 아프리카의 평균 수명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중이다. 빈곤율은 1990년대와 비교하면 중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로슬링은 “언론 보도가 잘못된 사례에 너무 많이 집중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대중은 잘못된 그림을 얻게 된다”고 지적한다.

영국의 가디언이 시장조사 업체 입소스모리 자료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무슬림이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프랑스 사람들은 31%라고 답변했다. 실제로는 8% 밖에 안 되는데 실제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무슬림 비율은 1%인데 여론조사에서는 15%라고 생각한다는 답이 나왔다. 실업률 통계도 비슷하다. 이탈리아에서는 실제 실업률이 12%인데 여론조사에서는 49%라는 높은 답변이 나왔다.

하게룹이 이런 말을 했다. “부정적인 뉴스는 무관심과 냉소를 부르고 사람들을 공개적인 토론에서 이탈하게 만든다. 우리는 저널리즘이 현실과 현실의 인식 사이의 필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저널리즘은 사회가 스스로 교정할 수 있도록 돕는 피드백 메커니즘(feedback mechanism to help society selfcorrect)”이 돼야 한다. 속보와 탐사 보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컨스트럭티브(constructive, 건설적인) 뉴스, 기회에 대한 뉴스다.”

인식의 필터와 피드백 메커니즘.

하게룹이 말하는 컨스트럭티브 뉴스는 솔루션(solution, 해법) 저널리즘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컨스트럭티브 뉴스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일련의 실험이 미국에서는 솔루션 저널리즘이란 프로젝트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출장에서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데이빗 본스타인 대표를 만날 기회를 얻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마침 미국을 방문 중인 이혜영 아쇼카코리아 대표의 소개로 출국을 3시간 남짓 앞두고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하게룹의 강연에 이어 본스타인과의 만남은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대안 없는 비판과 냉소, 부정적인 기사의 범람은 한국 역시 다르지 않다. 나 역시 17년 이상 기자 생활을 하면서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기자의 사명으로 생각해 왔다. 아무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기사는 좋은 기사가 아니라는 선배들의 훈련을 받으며 자랐고 의식적으로 착한 이야기를 경계하고 취재원과는 거리를 뒀다. 일단 뒤집어 보고 문제를 들춰내는 게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본스타인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저널리즘의 역할과 책임에 당연히 동의한다”면서도 “저널리즘이 사회에 기여하려면 두 종류의 정보가 필요한데, 첫째는 부정부패와 스캔들, 위험 요소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될 것이고 둘째는 더 나은 세상으로 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과 해법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흔히 저널리스트들은 감시와 비판을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권력과 맞서 싸우는 기자들이 나쁜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고 부패한 대통령을 물러나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저널리스트들이 계속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면서 정작 해결책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무관심하거나 둔감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칭찬하지 않는 부모와 깨진 유리창.

본스타인은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계속 혼만 내고 잘한 일에 대해서는 칭찬은 전혀 안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의료와 교육, 금융 등 정부 공공 부문에 대한 신뢰를 잃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미국 사람들이 왜 트럼프을 선택했을까. 좌절했기 때문이다.” 하게룹의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비판과 폭로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세상을 보는 필터를 왜곡하고 잘못된 결론으로 이끌 위험이 있다.

하게룹도 비슷한 말을 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언론의 사명이지만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언론이 비판적인 기사를 써야 한다는 건 오래된 신화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이 더 많은 뉴스를 원한다는 믿음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은 뉴스에 익사할 지경이다. 누가 더 빨리 보도하느냐, 누가 더 호되게 비판하느냐의 경쟁을 멈추고 대안과 해법을 이야기할 때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언뜻 모호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솔루션 저널리즘의 가이드라인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단순히 사건 보도를 넘어 컨텍스트를 제공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독자의 관여를 늘리고 임팩트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본스타인은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도록 하려면 이들이 기회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의 유형을 세 가지로 구분하면 속보의 목표는 바로 지금 발생 사건을 최대한 빨리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고 탐사 보도의 목표는 과거의 사건을 추적하고 비판하거나 폭로하는 것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의 목표는 독자들에게 아이디어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속보가 누가(who) 무엇을(what) 언제(when) 어떻게(how)에 집중한다면 탐사보도는 왜(why)에 집중하고 솔루션 저널리즘은 이제 무엇을(what now) 해야 하는지에 집중하는 보도다.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몇 가지 정의가 더 있다. 본스타인에 따르면 솔루션 저널리즘은 “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과 그 결과를 추적하는 언론 보도”를 말한다. 본스타인은 “질병과 맞서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면서 “무엇이 망가졌는지를 아는 것 못지 않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5W+1H에 ‘what now’를 더하라.

솔루션 저널리즘은 누가 했느냐(whodunnit)가 아니라 어떻게 했느냐(howdunnit)에 초점을 맞춘다. 포인터인스티튜트는 “솔루션 저널리즘 기법이 당신의 기사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단순히 따옴표 저널리즘(he said, she said coverage)을 넘어 솔루션 기반의 저널리즘은 좀 더 건설적인 담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들은 변화를 위한 모델을 필요로 하고 사회도 그렇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그동안 언론 보도가 문제의 해결 과정을 간과해 왔다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덴마크의 탐사 보도 전문 기자 캐서린 질덴스테드는 ‘포지티브 뉴스’에 이런 글을 남겼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유리창에 돌을 던진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뉴스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편견을 쏟아내는 언론의 관행이 유리창이 깨진 집을 계속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비명을 지르지만 해법은 속삭인다(The problems scream, but the solutions whisper).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의 희생자가 얼마인지를 보도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우리에게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이들을 돕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언론이 좀 더 직접적으로 현실에 개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독자들에게 아이디어를 불어넣고 직접적인 행동을 끌어내는 취재 보도 방식이다. 나도 할 수 있겠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스타인은 “저널리즘적 감각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능력을 사람들이 어떻게 문제에 대응하고 어떤 결과를 얻고 있으며 어떻게 그런 결과를 얻게 됐는지 그 과정에 대해, 그리고 그런 노력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쓰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에서 제공하는 솔루션 저널리즘 툴 킷(tool kit)에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판별하는 10가지 체크 포인트가 설명돼 있다. 첫 번째, 사회 문제의 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가. 두 번째, 문제에 대한 관련 반응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가. 세 번째, 문제 해결과 해결책 실행의 구체적인 방법까지 파고 드는가. 네 번째, 문제 해결이 기사의 핵심인가. 다섯 번째, 대응과 관련된 결과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는가. 여섯 번째, 대응의 한계에 대해 설명하는가. 일곱 번째, 통찰력이나 교훈을 전달하는가. 여덟 번째, 지나치게 미화된 기사처럼 보이지 않는가. 아홉 번째, 전문가가 아닌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용적인 통찰에 기반하는가. 열 번째, 히어로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본스타인은 “솔루션이 아니면서 솔루션인척 포장하는 가짜 솔루션을 경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적당히 솔루션 저널리즘을 흉내내는데 그치는 건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영웅 이야기와 가짜 솔루션을 경계하라.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려면 탐사 보도 이상으로 깊이 있는 취재가 필요하다. 단순히 ‘이것은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다’, ‘또는 아이들을 도웁시다’, 이런 말을 늘어놓는 걸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나?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고 확신하나? 검증된 결과가 있나? 성공 요인이 무엇인지, 어쩌다 가능한 한 번의 사례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계는 무엇인지, 비용이 너무 크지는 않은지, 정치적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확인을 해야 한다. 흑인 학생들의 중퇴율을 줄이려는 교사의 이야기, 또는 유아 사망률을 줄이려는 공무원의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해 보자. 이게 솔루션 저널리즘이 되려면 엄청난 공부와 확인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일하는 저널리스트들의 가장 큰 요청은 어떻게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문제를 가볍지 않게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을 해달라는 거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닌 것과 구분할 필요도 있다. 먼저 특정 개인을 띄우는 영웅 만들기는 해법과 거리가 멀다. 기술과 혁신을 과장하거나 맹신하는 것도 위험하다. 현장의 목소리에 매몰되거나 지나치게 홍보 일색으로 흐르는 것도 경계해야 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제안하는 이른바 싱크탱크 저널리즘도 솔루션 저널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5달러짜리 기부 버튼과 맞바꾸는 것은 곤란하다.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CNN ‘히어로즈(Heroes)’ 같은 프로그램을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본스타인은 “그런 건 명절 휴식용 프로그램”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이들의 선행이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오히려 문제를 남의 이야기로 만들고 해결을 멀어지게 만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의 역할이 따로 있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이를 테면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고등학교 중퇴율이 가장 낮은 도시는 어디인가. 어느 병원이 대기 시간이 가장 짧은가. 저소득 환자에게 건강 검진을 받게 만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10대 흡연을 막는 가장 성공한 정책은 무엇인가. 흑인과 백인의 졸업률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한 학교가 있는가. 솔루션 저널리즘 툴 킷에서는 이런 질문들을 ‘긍정적인 일탈(positive deviance)’이라고 부른다.

클리블랜드플레인딜러라는 신문이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시가 납 중독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다룬 시리즈 기사는 ‘긍정적 일탈’의 중요한 사례다. 로체스터시가 어린이 납 중독 비율을 80% 이상 떨어뜨린 데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납 중독을 치료하는 데 사후적으로 돈을 쏟기 보다는 납 중독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는 빈민층 거주 임대 주택 단지를 중심으로 검사를 시작하고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 시리즈 기사는 솔루션 저널리즘의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사례를 제시하고 다른 도시와 비교해 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면서 동기를 부여한다. 이 경우는 모든 지역을 검사하는 게 아니라 특정 지역을 찍어서 검사한다는 게 핵심이다. 간단하지만 확실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숫자를 들어 성과를 입증하고 단순히 개별 사례에 그치지 않고 다른 도시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구조적인 해법과 복제 가능성이 핵심.

퍼블릭라디오인터내셔널(PRI)이 보도한 샌프란시스코의 산전 검진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도 흥미롭다. 샌프란시스코는 1999년부터 임신부들을 한 달에 한 번씩 불러모아 집단 진료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병원 접근성이 낮은 이주 여성들이 대상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석한 임신부들은 자연 분만과 모유 수유 비율이 높고 조산 비율은 낮았다. 산후 우울증도 줄어들었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의 공립 병원 대부분이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시애틀타임스의 교육 혁신 시리즈 기사는 문제 해결 과정을 추적하는 솔루션 저널리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시애틀타임스는 2013년부터 고등학교 중퇴 비율을 낮추고 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에듀케이션 랩’을 설립하고 다양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대학 강의를 고등학교에 도입하거나 지역사회 현안을 놓고 토론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지역 사회와 언론이 공동으로 실험하면서 시행착오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훌륭한 아이디어의 복제 가능성(replicability)은 솔루션 저널리즘의 핵심이다. 영웅 스토리나 하나의 미담에 끝나지 않으려면 다른 문제를 겪고 있는 곳에서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노하우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데이터로 입증돼야 한다. 한 번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구조의 개혁을 끌어낼 수 있는 본질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하고 실패의 경험과 위험 요소까지 충분히 담고 있어야 한다.

카이저헬스뉴스가 보도한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카운티의 사례는 지역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교도소 수감자의 20%가 정신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노숙하거나 우울증을 겪고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갇힌다. ‘값 비싼 회전문’이었다. 샌안토니오 카운티는 정신 건강 및 약물 남용 대책과 노숙자 서비스를 통합하고 치료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샌안토니오 카운티의 문제의식은 간단했다. 감옥을 늘리는 것보다 이들이 감옥에 가지 않도록 치료하는 것이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마다 1만8000명 이상의 환자들이 48시간의 응급 입원과 90일의 회복 프로그램 등을 이용한 결과 정신질환 범죄가 크게 줄어들었고 해마다 1000만달러 이상을 절약하게 됐다. 지금은 미국 전역에서 샌안토니오 카운티의 사례를 연구하러 찾아온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결과가 무엇인가 보다 어떻게 그런 결과를 얻었느냐에 집중한다. 본스타인은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사례를 취재하면서 60개의 어떻게(how)라는 질문을 준비했다고 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이 수많은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전문가에게 묻기 보다는 현장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 개인을 부각시키지 않되, 이들의 경험을 최대한 자세히 풀어내야 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단순히 좋은 뉴스(good news)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희망을 갖고 새로운 것과 더 나은 것과 다른 것을 찾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번스타인은 “단순히 멋진 이야기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숫자로 입증해야 하고 계속해서 검증해야 한다. “완벽하게 완성된 솔루션은 있을 수 없다. 노력과 결과가 있고 저널리스트들은 이를 계속 보도하고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특정 솔루션을 대변하는 것은 위험하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도입하려는 언론사들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편집국 또는 보도국의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솔루션 저널리즘에 배분할 것인가다. 본스타인은 “언제나 마감 시간에 쫓기지만 기자들에게 한 번 더 본질적인 해법을 고민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험이 쌓이면 예전에 하지 않았던 질문을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솔루션 저널리스트로 성장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퍼블릭라디오인터내셔널의 마이클 스콜러는 “가장 어려웠던 건 해법엔 관심이 없고 문제 자체에 집중하는 기자들의 문화였다”면서 “문제나 갈등 보다는 대안에 집중하도록 본능의 변화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페이엇빌옵서버의 마이클 아담스는 “데스크가 매우 회의적이었느지만 첫 번째 기사를 쓴 뒤에 완벽하게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애틀타임스의 캐시 베스트는 “우리는 독자들과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게 됐다”고 말했다.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진실과 해법.

코퍼스크리스티콜러타임스의 브로 크리프트는 “일단 시작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데스크가 계속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타일러모닝텔레그래프의 앨리슨 폴란도 “시도해서 나쁠 건 없다”면서 “독자와 기자들이 싫어한다면 그만 두면 된다”고 조언했다. 마이클 아담스는 “문제에 기반한(problem-based) 보도의 장점을 버리라는 게 아니라 한 발 더 들어간 최선의 보도 형식을 찾으라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설립한 빌앤멜린다재단을 비롯해 록펠러재단과 포드재단 등이 후원하고 있다. 지난해 운영 비용은 380만달러로 2015년 대비 68% 가량 늘어난 규모다.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지원하거나 언론인들을 교육하는 역할을 한다. 세계적으로 2500여명의 기자들이 활동하고 있고 기사 소스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스토리트래커에는 350여개 언론사의 기사 2000여건이 등록돼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취재하면서 워터게이트 사건의 칼 번스타인의 말이 맴돌았다. 저널리즘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진실(the best obtainable version of the truth)”에 다가가는 것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한 걸음 더 들어가 해법을 찾으라고 주문한다. 넘쳐나는 팩트가 진실을 가리거나 진실을 왜곡할 때도 많다. 기자들은 중개자가 아니라 의미 부여자가 돼야 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의 대안이라기 보다는 저널리즘의 본질을 좀 더 잘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솔루션 저널리즘의 실험이 가능할까. 우선은 한국 여론 지형에서 네거티브 뉴스의 비율과 사회적 영향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와 협업도 가능하겠지만 한국형 솔루션 저널리즘의 사례 수집과 리스트 업과 함께 솔루션 저널리즘 방법론을 정립할 필요도 있다. 솔루션 저널리스트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속가능한 저널리즘 생태계를 모색하는 논의도 필요할 것 같다.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