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과 구조에 대한 질문, 해법과 과정을 추적하라.”

“솔루션 저널리즘, 조직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안녕하세요. 미디어오늘 이정환 대표입니다. 오늘은 “솔루션 저널리즘과 저널리즘 씽킹 방법론”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3년 전부터 솔루션 저널리즘을 한국에 소개하고 교육도 하고 있는데요. 여전히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거 우리가 늘 하던 거 아냐?” “언론이 답을 내놔야 돼?” “언론은 사실을 전달하고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게 일이지 답을 찾는 건 정치의 역할 아닌가?”

‘솔루션 저널리즘(solution journalism)’은 언론이 답을 내놓겠다는 게 아닙니다. 단어가 선입견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정확하게는 ‘솔루션 포커스드 저널리즘(solution focused journalism)’, 그러니까 해법을 이야기하는 저널리즘이라기 보다는 해법에 집중하는 저널리즘, 해법을 모색하는 저널리즘에 가깝습니다. 문제를 다루는 보도는 이미 넘쳐나니까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다루는 보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문제는 비명을 지르고 해법은 속삭인다(Problems scream, Solutions whisper)”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아야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문제를 들춰내고 고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원래 이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많은 언론 보도가 사람들을 냉소하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들죠.

문제는 비명을 지르고 해법은 속삭인다.

우리가 쓰는 기사에는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왜(why), 어떻게(how) 등의 사실이 충실하게 담겨 있습니다. 사실은 사실 그것만으로도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좀 더 나가서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What Now)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 솔루션 저널리즘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고 도전하고 ‘희망을 가질 이유(reason to hope)’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우리는 생리대가 없어서 운동화 깔창을 생리대처럼 쓴다는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기사로 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에도 관심이 없고요. 그래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생리대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 여학생이 10만 명이라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게 해법이야.” 언론이 툭 답을 던져 놓을 수 있으면 좋겠죠.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만 해법이 무엇인가 찾고 해법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추적하고 기록하고 무엇이 최선인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검증하면서 최선의 해법에 접근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해서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언론의 부정적인 편향이 독자들의 냉소와 무관심을 부추기고 편견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언론의 오래된 습관입니다. 기사가 되는 것에 집중하고 좀 더 섹시한 ‘야마’를 만들기 위해 사실을 재단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부분이 강조되고 맥락이 뭉뚱그려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달리 해보자는 제안입니다. 가능성을 이야기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폭리를 취하고 있는 거대 제약회사들을 비판할 수 있지만 싼값에 에이즈 치료약을 보급하는 방법을 보도할 수도 있습니다. 저소득 계층의 납 중독 실태를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보상을 받아내고 어떻게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웠는지를 보도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답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답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물어볼 수 있겠죠. 무엇이 답일까요? 답을 찾았거나 찾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나요?

미국에서는 교도소 수감자의 20%가 정신 질환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감옥에 주립 병원보다 더 많은 정신질환 환자가 수용돼 있는데 이들이 출소 직후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값비싼 회전문(expensive revolving door)’이라고 불렀습니다. 교도소를 더 짓고 교도소 침대를 늘리는 것보다 정신건강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 세금을 줄이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겁니다.

그래서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카운티에서는 정신 건강 및 약물 남용 대책과 노숙자 서비스를 통합하고 치료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교도소와 병원, 법원, 경찰 등이 모두 별도의 사일로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협력을 끌어낸 것이죠. 경찰이 마약 압수 자금을 기부하기도 했고요. 그 결과 5년 동안 5000만 달러의 사회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카이저헬스뉴스라는 신문이 이 모든 과정을 추적하고 꼼꼼하게 기록했습니다.

누가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했느냐.

솔루션 저널리즘에서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확장성(scalability)’과 ‘복제 가능성(replicability)’입니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데이빗 본스타인(David Bornstein) 대표는 “누가 했느냐(Who dunnit) 보다 어떻게 했느냐(How dunnit)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해법이 주인공이 돼야 하고 일회성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확장하고 복제돼야 비로소 시스템을 바꾸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흑인 산모들의 모유 수유 비율은 59% 밖에 안 됩니다. 백인은 75%, 히스패닉은 80%인데요. 신생아 생후 6개월 동안 모유 수유만 하는 비율은 흑인 산모가 30%, 백인은 47%, 히스패닉은 45%로 차이가 큽니다. 저소득 흑인 산모의 아이들이 병에 더 잘 걸리고 영아 사망률도 높습니다. 흑인 여성들이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느라 산모 교육을 못 받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예 시절 흑인 유모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명확하지만 해법을 찾는 과정은 모호하고 불확실합니다. 디트로이트 세인트존 메디컬센터에서는 2011년부터 흑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산모교육(Mother Nurture)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유 수유 경험이 있는 흑인 여성들이 다른 흑인 여성들에게 모유 수유를 격려하고 상담하면서 오래된 편견을 깨뜨린 것이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대부분이 흑인인 이 병원 산모들의 모유수유 비율이 46%에서 4년 만에 64%로 뛰어올랐습니다.

미국의 시애틀타임스는 2013년부터 ‘에듀케이션 랩(Education Lab, 교육 실험실)’이라는 이름으로 교육 혁신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교육 문제를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해결해 보자는 접근이었죠. 최악의 학교를 찾아가서 왜 이렇게 엉망인지 고발하는 대신에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조금씩 바꿔나가는 학교를 찾아서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는지 추적하고 기록하면서 함께 답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를 테면 문제 학생들을 학교에서 퇴출시키는 대신에 학교에 나오게 해서 읽기와 쓰기 과제를 주고 별도의 포럼과 그룹 상담 등을 진행하면서 다시 수업에 합류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교사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도 있었고요. 놀라운 건 교사나 친구들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행동이 바뀌더라는 겁니다. 이 시리즈 기사는 많은 교사와 부모들에게 영감을 줬습니다.

시스템 씽킹과 디자인 씽킹.

보스턴글로브의 특종 보도를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기자들이 사건을 잡았다고 기사를 내보내자고 말하니까 편집국장 마틴 배런이 이렇게 말합니다. “조직에 초점을 맞춰요. 사제 개개인 말고. 관행과 방침에 대해. 교회가 체계를 조작해서 고소를 면했다는 증거를 가져와요. 바로 그 사제들을 다시 교구로 보내고 또 보냈다는 증거와 그리고 체계적으로 위에서 지시했다는 증거도. 시스템을 고발해야죠.”

솔루션 저널리즘의 방법론으로 시스템 씽킹(system thinking)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겠습니다. 시스템 씽킹은 사건을 관찰하고 패턴을 발견하고 구조를 이해하고 모델을 정립하면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입니다. 각각의 사건을 따로 보지 않고 관계와 연결에 집중하면서 단기적인 해법과 구조적 해법의 균형을 찾는 것입니다. “시스템을 고발하라”는 마틴 배런이 기자들에게 요구한 것이 바로 시스템 씽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에서 구조에 접근하는 것이 시스템 씽킹이라면 구조에서 해법을 끌어내는 것이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입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습니다. 디자인 씽킹은 단순히 디자이너들처럼 생각해 보자는 차원을 넘어 문제에서 기회를 찾고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테스트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에 부딪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좀 더 나가면 스타트업에서 활용하는 린(lean) 방법론을 디자인 씽킹에 접목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솔루션 저널리즘의 구체적인 전략으로 제안하는 것이 저널리즘 씽킹(journalism thinking) 방법론입니다. 첫째, 사실을 취사선택하고, 둘째, 문제를 정확하게 규정하고, 셋째, 질문을 시작하고, 넷째, 반론을 듣고 검증하고, 다섯째, 핵심을 뽑고 해법을 끌어내는 과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셋째와 넷째 단계를 계속 반복하면서 핵심에 다가가는 과정입니다. 저널리스트가 가장 잘 하는 일이고 가장 잘 해야 하는 일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이해하려면 무엇이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닌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영웅 만들기는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닙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만 적당히 박수를 치고 끝나는 걸로는 안 됩니다. 정치가 나서야 한다거나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거나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등의 이른바 ‘씽크탱크 저널리즘’을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잘 만든 기획 기사의 마무리가 전문가 좌담이나 인터뷰로 끝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거나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거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등의 거창하고 준엄한 열린 결말을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이것만 하면 돼, 이른바 ‘실버 불렛(silver bullet)’도 답이 될 수 없고 즉각적인 후원이나 모금, 따뜻하고 눈물나고 감동적인 미담 기사도 솔루션 저널리즘과는 방향이 다릅니다.

데이빗 본스타인은 “‘이것은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다’, ‘또는 아이들을 도웁시다’, 이런 말을 늘어놓는 걸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고 확신하는가, 검증된 결과가 있는가, 성공 요인이 무엇이고 어쩌다 가능한 한 번의 사례인지 아닌지, 한계는 무엇인지, 비용이 너무 크지는 않은지, 정치적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해답을 찾는 과정, ‘실버 불렛’은 없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언제나 섹시한 해법으로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지난 2016년 80여개 언론사들이 모여서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SF Homeless Project)라는 이름으로 공동 취재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2017년 기준으로 노숙인이 7000명, 노숙인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 가운데 하나죠. 지역 언론들이 모여서 뭔가 답을 찾아보자고 나선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을 비롯한 지역 언론사들이 평범한 시민이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추적했고, 여러 정책적 과제들을 직접 실험하고 검증하면서 대안을 파고 들었습니다. 9개월 동안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 홈리스 보호소 건립이 앞당겨졌고, 기업 후원도 늘어났습니다. 노숙인 바우처 제도도 정착됐습니다. 그렇지만 노숙인들이 완전히 사라졌느냐? 그건 아닙니다. 이것만 하면 돼, 이런 답이 있을 수가 없는 문제죠.

우리가 눈여겨 볼 부분은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노숙인들에게 잠잘 곳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이들이 길거리를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막연하지만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것입니다. 일련의 프로젝트의 성과로 지난해 노숙인 지원 법안이 통과됐고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기업들에게 추가 세금을 부과하고 노숙인 약물 치료와 보호소 확충, 재활 지원 사업 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변화는 느리고 더디지만 원래 그렇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는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샌디에이고로 확산돼 ‘샌디에이고 홈리스 어웨어니스’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확장성’과 ‘복제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죠. 과정에 주목하는 언론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성공 사례에 그치지 않고 시스템을 바꾸는 실험이 지역을 넘어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기존의 관행과 습관을 바꾸지 않고는 언제까지나 남의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 언론에 부족한 것이 해답을 찾는 과정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우루루 몰려가고 현장을 중계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인터뷰하고 수많은 기사를 쏟아내지만 본질이 무엇인가 묻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고 사건의 구조를 읽고 질문과 토론을 제안하는 과정이 결여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란 게 명확한 기준과 프레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덴마크의 울릭 하게룹(Ulrik Haagerup)은 컨스트럭티브 뉴스(Constructive News)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개념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호주 등에서도 솔루션 저널리즘의 실험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일 수도 있고 컨스트럭티브 뉴스일 수도 있고 ‘저널리즘+디자인’일 수도 있습니다.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저널리즘의 확장에 대한 논의와 실험입니다.

울릭 하게룹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정적인 뉴스는 무관심과 냉소를 부르고 사람들을 공개적인 토론에서 이탈하게 만듭니다. 저널리즘은 현실과 현실의 인식 사이의 필터입니다. 저널리즘은 사회가 스스로 교정할 수 있도록 돕는 피드백 메커니즘(feedback mechanism to help society selfcorrect)이 돼야 합니다. 속보와 탐사 보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컨스트럭티브 뉴스, 그리고 기회에 대한 뉴스입니다.”

미국에서도 솔루션 저널리즘을 도입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에서 ‘솔루션 저널리즘 툴킷’이 곧 한국어로 번역돼서 출간될 계획인데요. 여기 많은 실전 사례들이 담겨 있습니다. 한 번 솔루션 저널리즘을 실험해 본 기자들은 다시는 이전의 기사 작성 방식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해법이 아니라 문제에 집중하는 기자들의 관행을 바꾸는 게 가장 어렵다는 고백도 있었습니다.

신문과방송의 인터뷰에 따르면 지역신문일수록 그리고 규모가 작은 신문일수록 솔루션 저널리즘의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오하이오주 맨스필드의 지역 신문 리처드소스(Richard Source)는 법정관리 직전에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7만 달러의 후원을 받아 회생했습니다. 프랑스의 니스-마틴(Nice-Matin)은 폐간 직전의 경영난에서 솔루션 저널리즘 실험 이후 유료 구독자가 70% 늘고 페이지뷰와 체류시간이 각각 300%와 400%씩 늘어났습니다.

피드백 메커니즘으로서의 저널리즘.

솔루션 저널리즘은 기자에게 답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답을 내놓을 수도 없습니다. 기자는 답을 찾는 과정에 함께 할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닙니다. 우리 기자들이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지고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죠.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해법을 주인공으로, 관점과 접근 방식을 달리 해보자는 것입니다.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변화의 희망을 불어넣는 적극적인 저널리즘이 필요합니다. 기자가 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함께 답을 찾아보자고 제안해야 합니다. 시민사회 진영과 협업도 필요합니다. 끊임 없이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참여를 끌어내야 합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저널리즘의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널리즘을 더욱 충실하게, 민주주의를 더욱 탄탄하게, 그리고 변화를 더욱 앞당기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언론에 저널리즘 씽킹 방법론을 제안합니다. 저널리즘의 신뢰가 바닥없이 추락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부정 부패를 폭로하는 것은 언론의 고유한 사명입니다. 하지만 갈등을 중계하고 분노를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프로세스를 바꿔야 합니다. 본질에 대한 고민, 구조에 대한 질문, 반론과 검증, 대안과 해법을 찾는 토론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이정환의 ‘문제 해결 저널리즘’에 실린 원고 가운데 일부입니다.)